
























|

 |
 |
 |
 |
남정호 南貞鎬 |
 |
 |
|
 |
 |
|
|
| 출생
: |
1952년 부산 |
| 학력
: |
이화여대 무용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프랑스 렌느 Ⅱ 대학 예술사학과 박사과정 이수. 소르본느대학 디플롬 수료 |
| 경력
: |
프랑스 장-고당 무용단 단원(1980- 1981). 경성대학교 무용과 교수 역임(1982- 1996). 줌현대무용단 창단(1988). UCLA무용과 객원교수(1992, 가을학기), Japan Founda- tion Artist Fellowship(2000),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1996-) |
| 수상
: |
코파나스상(한국현대무용협회 주최), 일본 「사이타마국제창작무용콩쿠르」 특별상(1990), 제4회 김수근 문화예술상(199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창작활성화 지원금 수혜(1997, 『나는 꿈 속에서 춤을 추었네』), 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최우수 예술가상(1999), 한국문화예술진흥원·서울문예진흥원 우수레퍼토리 선정(1999) |
|
작품활동 |
 |
안무작
『안녕하세요』(1982) 『대각선』(1982) 『세 개의 선』 『4인무』(1983) 『비밀의 뜰』(1983) 『다섯 개의 에피소드』(1984) 『유희Ⅰ』(1984) 『유희Ⅱ』(1985) 『도시이야기』(1985) 『풍선심장』(1986) 『얘들아 나오너라 달따러 가자』(1987) 『자화상』(1988) 『달따는 아이』(1989) 『가시리』(1990) 『목신의 오후』(1990) 『대화』(1990) 『아이야 저 산너머에 무엇이』(1990) 『구르는 돌처럼』(1991) 『우물가의 여인들』(1993) 『또 하나의 유희』(1993) 『나그네들』(1994) 『빨래』(1994) 『여름나그네』(1995) 『신부』(1996) 『외출』(1996) 『즉흥』(1996) 『꿈속의 거리』(1997) 『춤추는 디자인- 사계』(1997) 『꿈꾸는 도시』(1997) 『들에서』(1997) 『허수아비』(1997) 『벼랑에서』(1998) 『고도를 기다리며』(1999) 『패러디 파 드 캬트르』(1999) 『사랑을 찾아서』(1999) 『성난 돌진』(1999) 『두 도시 이야기- 서울·동경』(2000) 외 다수 |
저술활동 |
 |
저서 및 역서
「맨발의 텝시코레」(신세대출판사) 「현대무용 감상법」(대원사) 「뉴댄스」(역서, 도서출판 금광) |
남정호는 동심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를 유희의 측면에서 반영하고 일상적 심리를 춤으로써 심층 분석해온 무용가이다. 프랑스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미국 스타일의 현대무용에 치우쳤던 한국의 현대무용에 프랑스풍의 현대무용을 도입하여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으며, 무용을 지성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해 왔다.
남정호는 1952년생으로 10살이 되던 해 발레에 입문하였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계속 발레를 수련하였으나 콩쿠르에 나간 적은 없었다. 1971년 이화여대 무용과에 입학한 후에 전공을 현대무용으로 바꾸고 박외선 교수로부터 현대무용을 사사하였다. 졸업 후 부산에서 무용교사로 활동하면서 이화여자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대학원 논문 주제가 ‘봄의 제전’이었는데, 이는 남정호로 하여금 서양의 무용 세계를 깊게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벨기에 루벵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아버지가 남정호가 어릴 적부터 유럽 문화에 대해 많은 어드바이스를 해준 것이 그를 유럽 무용에 접근하도록 유도한 잠재적 동기로 보인다.
남정호는 1978년에 프랑스로 유학하여 어학 연수를 마친 뒤 렌느II 대학 예술학 박사 DEA 코스에 등록했다 . 이 과정에서 ‘니진스키가 계속 무용수로 활동하고 안무가가 되지 않았다면 정신적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설에 전제를 둔 논문을 썼고 이 기간 동안 렌느국립안무센터에서 수련하며 일반인들에게 무용도 가르쳤다. 1980년에 파리 4대학(소르본)에서 디플롬 드 라 당스 과정에 입학하여 현대무용을 비롯 다양한 무용강좌를 섭렵하였다. 이와 함께 같은 해에 파리에서 피터 고스 댄스 스튜디오에서 수련하였고, 이 스튜디오에서 장 고당(Jean Gaudin )을 만나 그의 무용단 단원이 되었고 작품 『Voyage au bout du monde』 등에 출연하였다. 파리에서 디플롬 과정을 수료하고 1981년 렌느에서 DEA 코스를 마치고 나서 그해 여름 귀국하였다.
1982년 봄, 남정호는 부산 경성대 무용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그해 4월 그는 서울의 공간 소극장에서 독무 『안녕하세요』를 바흐의 「토카타 D단조」에 맞춰 발표하였다. 토카타 음악의 장중한 분위기와는 관련없이 펼쳐진 이 작품은 움직임의 다양하며 우아한 변주로서 평론가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함께 발표된 『대각선』에서는 동작의 자연스런 풀림이 위주가 되었다. 첫 발표회에서 그는 ‘기교를 찾고 기교의 틀에 맞추듯이 전개되는 관행이 지배하던 당시의 한국 현대무용과는 다른 전개 방식을 보여준 것이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 후 남정호는 주로 부산과 서울에서 해마다 무대를 가졌다. 특히 그때 부산은 현대무용의 활동이 한산하였고 남정호는 그 지역의 현대무용 활성화에 자극이 되었다. 이 무렵 남정호의 춤은 대체로 인체 에너지 안배에서 이질성과 동질성을 반복함으로써 미세하게 이뤄지는 동작 변화에 바탕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1983년의 『4인무』는 『안녕하세요』에 비해 역학적 구성을 강조해서 에너지의 축적과 소멸에 초점을 맞춰 끌어갔다. 같은 해에 서울무용제에 출품한 『비밀의 뜰』의 가벼우며 상쾌한 기조는 그 다음 해의 『다섯 가지 이야기』로 이어졌다. 1984년 10월 남정호는 서울무용제에서 『유희』로 참가, 이 작품은 남정호 춤 세계에서 커다란 전환을 예고한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1982년 남정호는 사회학자와 결혼하였으며, 그의 춤 세계의 전환이 점차 잉태되기 시작하였다. 사회학자 남편이 소개한 요한 호이징하의 저서 「호모 루덴스」는 남정호에게 춤과 유희 정신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착상을 제공하였다. 당초부터 에너지의 변화에 의해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경쾌하며 밝은 세계를 추구하던 남정호의 춤과 유희의 세계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작품 『유희』는 절제된 감정으로 신변의 풍경들을 다채색으로 묘사하였다. 그 후 『도시 이야기』(1985), 『풍선 심장』(1986) 등은 남정호가 생활의 이면에서 느낄 수 있는 유희 같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어놓는 작업들을 보여 주었다. 이와 같은 유희 정신은 소재를 달리하면서도 그 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남정호 스타일의 무용 개념이 되었다. 달빛 아래서의 아이들 놀이를 은유하고, 어머니들만의 정겨운 대화를 놀이로 풀어내고, 인간의 이성애를 심층 분석하는 등 유희를 춤의 펌프로 사용하는 데 있어 남정호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남정호에게서 유희의 세계가 즐거운 끝맺음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남정호로 하여금 유희하게 만드는 이면의 세계도 있었다. 그러므로 남정호의 춤들은 종종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가벼운 돌발성들을 갖고 사물을 뒤집어 보는 비판적 경향이 있다. 독무 『자화상』(1988), 군무 『아이야 저 산너머에 무엇이』(1990)와 같은 경우 유희적 상황 속에서 오히려 페미니스트적인 자기반성이나 억압에 대한 재치있는 발언을 강조하였다. 『자화상』에서 남정호는 보자기를 등장시켰고 색색깔의 보자기를 뒤집어썼다가 벗었다하기도 하고 그 보자기들을 이어서 줄을 만들기도 하면서 여성의 내면을 시시각각으로 변화시켰다. 남정호는 이 작품 말고도 다른 작품들에서 다양한 가벼운 오브제들을 등장시키곤 했으며, 그것들은 동작과 뒤섞여 춤에 여러 차원을 덧붙이는 구실을 한다. 『자화상』은 여성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으며, 그전에 경쾌하면서 비트는 듯한 작품 성향과 비교할 때 이러한 연민은 그가 여성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고 이와 동시에 깔끔한 유희의 세계도 달라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1988년 남정호는 경성대학의 현대무용 전공 제자들을 주축으로 한 현대 무용단 줌(Zoom)을 창단했다. 그 목적은 실험적이며 진취적인 현대무용을 창작한다는 것이었다. 이 무용단의 단원들은 다수가 해외로 유학하였고 또 귀국해서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1988년 이후 그의 창작은 독무작과 몇 편의 객원 안무작을 제외하면 대체로 줌무용단의 단원들을 기용해서 이뤄지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에 그는 경성대학교 차원에서 동료 교수들과 함께 힘을 합하여 「부산 여름무용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이 행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부산에서 무용이 활성화하고 부산과 타 지역의 무용이 교류하는 계기로 평가되었다.
남정호가 1990년에 발표한 『가시리』는 하얀색의 느슨한 코스츔으로 진행된 독무였다. 한국의 장단에 맞춰 한동안 미니멀한 동작으로 전개되다 그 자세를 흐트려 나가는 『가시리』에서 한국 여인의 기다림의 미학 같은 것이 강하게 노출되었다. 이 작품은 『유희』에서 시사되었던 여성에 대한 인식 전환을 보다 구체화시킨 것이었으며, 이와 같은 전환은 『우물가의 여인들』(1993), 『빨래』(1994)로 굳어졌다. 이 때를 전후해서 남정호는 타악기, 색스폰, 사물놀이 연주자들과 함께 다분히 즉흥적인 춤을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추는 활동도 시작하였다.
『빨래』는 한국 여인네들이 우물가에서 빨래하며 그들 나름의 공동체적 정서를 형성하는 모습에서 착안되었다. 이 작품은 원래 예술의전당 초청 공연작인 『우물가의 여인들』을 개작한 것이었는데, 이별, 사별, 소박과 같은 소외와 기다림이 체질화되었던 한국 전통사회의 여성성을 배경으로 그들 사이의 운명의 동질성을 빨래터에서의 여러 모습들로 그려내었다. 여기서 유희의 순간들은 한국의 여러 가지 북소리 리듬을 타고 노는 다섯 여인네들의 몸짓으로 연출되었다. 이전의 유희 정신은 『빨래』에 이르러 생활 정서를 근거있게 반영한 존재의 표현으로 도약하였다. 여기서 전래의 세계는 전래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는 동기가 된다. 이를 계기로 남정호의 춤 세계는 도회적이며 세련된 여성의 재기발랄한 감수성으로부터 한국의 여인네들을 이야기하는 서술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다시 말해 그에게 있어 유희는 무대에서 직접 자신을 실현하는 통로인 동시에 인간을 해석하고 사회를 해부하며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나침반과 같은 구실을 한다.
『빨래』 이후 남정호가 도회적이며 세련된 감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한국 여성의 미감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남정호가 1995년 홍콩에서 발표한 독무 『신부』는 전통 한국의 웨딩드레스인 활옷을 의상으로 하였고 혼례에 임하는 신부의 조신한 거동이 나중에 일그러지면서 현대무용 동작으로 바뀐다. 전통 혼례의 거동이 춤 소재가 된 사실은 한국의 전통적인 세련된 문화와 감성에 대한 그의 취향 그리고 고급문화 애호가였던 부모의 가풍을 다소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1996년 남정호는 「한 여름밤의 꿈을 패러프라이즈한 『나는 꿈 속에서 춤을 추었네』에서 객석을 비우고 무대의 일부를 객석에 할애하면서 관객과 공연자의 시선을 완전히 도치시켰다. 극장 구조를 뒤엎은 행위는 극장 공간에 대한 유희 같은 접근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작품의 말미에는 춤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 작품을 1999년에 다시 개작하여 남정호는 남녀의 일탈 심리를 격정적인 춤의 체취와 결부시켰다. 『나는 꿈 속 에서…』 개작품에는 남정호의 동생 남영호와 남긍호(마임 작가)가 출연하였다. 남정호가 초기의 경쾌하며 가벼운 움직임으로부터 매우 멀리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남정호의 일정한 도전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남정호는 이미 움직임에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1990년 부산시립무용단에서 객원 안무한 『목신의 오후』는 일상적 움직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조립한 것이다. 1994년 「민족춤제전」에 출품한 『나그네』는 기나긴 인생행로 또는 우여곡절을 암시한 내용으로 여기서 < |
|
 |
 |
|
 |
 |
 |
 |
 |
 |
 |
 |
 |
 |
 |
목록으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