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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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범 宋范
출생 : 1926년 충북
학력 : 양정중학교 졸업(1945), 조택원무용연구소, 박용호연구소, 장추화 무용연구소 수학
경력 : 장추화 무용연구소 교육 조교, 한국무용단 합류(1951), 코리아발레단 조직(1955), 한국무용가 협회 조직(1956),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취임(1961), 국립무용단 활동(1962), 멕시코 올림픽 한국민속예술단 참가(1968),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1972), 뮌헨 올림픽 한국민족예술단 참가(1972), 초대 국립무용단 단장(1973), 미국독립 200주년 기념공연(1976), 대한민국예술원 회원(1983-), 국립무용단 퇴임 및 중앙대 무용과 명예교수(1992)
수상 : 서울시 문화상(1968), 대통령 표창(1972), 국민훈장 동백장(冬柏章)(1973),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3), 무용공로상(1982), 대한민국예술원상 (1984)


작품활동
출연작
『천하대장군』(1947) 『불의 희생』(1952) 『비련』(1956) 『배신』(김진걸 안무, 1963) 외 다수
안무작
『습작』(1948) 『출진(出陣)』(1949) 『기해(機海)』(1950)『睡蓮夢』(1950) 『망향(望鄕)』(1951)『유랑(流浪)』(1951)『전선(前線)』(1951) 『양자강(楊子江)』(1951)『승전보(勝戰譜)』(1952)『불의 犧牲』(1952) 『거미의 生態』(1952) 『힘과 線』(1952) 『4285년』(1952) 『영원한 조국(1952) 『무녀무도(1952) 『使蛇의 춤』(1952) 『자연을 呼吸함』(1952) 『뱀의 생리』(1953) 『파랑새』(1953) 『아다지오의 밤』(1953) 『토리아귀』(1953) 『라오펜』(1953) 『인도라』(1953) 『지평선』(1953) 『불춤』(1953) 『동란일기』(1953) 『자유』(1953)『오월의 인상(印象)』(1953) 『4월의 노래』(1953) 『예술가(藝術家)의 일생』(1953)『아리랑 환상곡(幻想曲)』(1953) 『향사(鄕士)의 정서(情緖)』(1953) 『명상(瞑想)에의 동의(同意)』(1954) 『여명(黎明)』(1954) 『印度의 연가』(1954) 『생존경쟁(生存競爭)』(1955) 『벽(壁)』(1955) 『공장지대(工場地帶)』(1955) 『印度의 壁書』(1955) 『오월의 분수(噴水)』(1956) 『十月의 노래』(1956) 『죽음의 승리(勝利)』(1956) 『만유인력』(1956) 『만나서는 안될 너와 나』(1956) 『라일락 피는 밤』(1956) 『패북자(敗北者)』(1956) 『항거(抗拒)』(1956) 『환영(幻影)의 사람』(1956) 『안단테·칸타빌레』(1957) 『유쾌(愉快)한 휴일』(1957) 『환상교향곡(幻想交響曲)』(1957) 『한여름밤의 꿈』(1957) 『저향(抵抗)』(1957) 『荊路』(1957) 『黑依의 女人』(1958) 『무도회의 권유(舞蹈會의 勸誘)』(1958) 『生靈의 呻吟』(1958) 『蠻地의 연가』(1958) 『白色의 圓舞曲』(1958) 『밤구름』(1958) 『現代人』(1959) 『월광(月光)』(1959) 『열풍지대(熱風地帶)』(1959) 『추억의 야회(追憶의 夜會)』(1959) 『백야(白夜)』(1960) 『기항지(寄港地)』(1960) 『혁명전야(革命前夜)』(1961) 『農樂』(1961) 『죄와 벌』(1961) 『靈은 살아있다』(1962) 『고요한 찬가』(1963) 『에츄드』(1963) 『에레지』(1963) 『도피자』(1963) 『향수』(1963) 『검은 태양』(1963) 『암흑』(1963) 『사바의 유혹』(1963) 『광열의 고독』(1963) 『멍든 山花』(1965) 『王妃 훼도르』(1966) 『심산유곡(深山幽谷)』(1966) 『종송』(1967) 『人間투쟁』(1967) 『화관무』(1968) 『仙女춤』(1968) 『연가(戀歌)』(1968) 『달과 女人』(1968) 『結婚 날』(1969) 『전원풍경(田園風景)』(1970) 『僧舞, 관등놀이』(1971) 『강강술래』(1972) 『단오절(端午節)』(1972) 『별의 전설』(1973) 『왕자호동』(1974) 『백의 환상』(1975) 『사의 승무』(1975) 『춘향전』(1977) 『마음 속에 이는 바람』(1978) 『꿈·꿈·꿈』(1979) 『푸른 천지』(1980) 『썰물』(1982) 『도미부인』(1984) 『은하수』(1986) 『그 하늘 그 북소리』(1990) 『황혼의 노래』(1995) 『오셀로』(1996) 외 다수
저술활동
저서
「송범 그 인생과 예술」(1992, 신주희와 함께 편저, 서울 교양사), 「나의 춤, 나의 길」(2002, 김태원 편, 현대미학사 발행)
원로 무용가 송범에 대해 평론가 이병옥은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송범은 피상적으로 볼 때, 20세기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 무용계에서 한 가지만 성공해도 명예로울 시절에 여러 가지의 명성과 직책을 한 몸에 안은 무용가이다. 그는 최승희, 조택원, 박용호, 장추화 등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 원 없이 춤을 배웠고 또 춤추었으며, 국내 최고의 국립의 무용단장이 되어 원 없이 춤을 만들었고, 국수호, 양성옥 등 수많은 중견 제자 무용가를 길러낸 인물이기에 더더욱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춤인생과 춤예술의 한국무용사적 의의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20세기 한국의 무용이 무대예술시대를 만들어온 예술무용계 1세대 최승희, 조택원, 장추화 등의 개척자들의 춤을 다양하게 섭렵한 예술무용 2세대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6·25동란으로 스승세대가 국내를 떠난 무용계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이란 중책을 맡아 당시 신진무용가로서 열정과 투지를 발휘하여 동숭동에 자신의 연구소를 개설하는 한편, 1955년 코리아발레단을 조직하여 공연활동을 하였고, 1956년 한국무용가협회를 조직하여 임성남, 김백봉과 함께 안제승 연출로 『비련』을 공연하면서부터 1962년까지 왕성하고 의욕적인 무대를 마련해갔다.
둘째, 그는 1962년 창단된 국립무용단의 부단장과 단장으로서, 국립무용단 40년 역사의 살아있는 화석처럼 20세기말까지 화려하게 장식한 장본인이 되었다. ‘국립무용단은 곧 바로 송범이다’라는 등식을 성립시킬만큼 국립무용단의 역사의 주역으로 주옥같은 작품을 내놓았다.
셋째, 그는 현대무용과 발레로부터 춤을 시작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지만 점차 민족무용인 한국무용가로 변신하여 성공한 무용가이다. 어떻게 보면 무용시류에 잘 편승한 무용가라고도 할 수 있고, 무용사조를 잘 읽어낸 무용가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는 무용세계가 흘러가는 안목을 누구보다도 잘 예견하고 적절히 대처하면서 남보다 더 노력하고 정열을 불사른 무용가이였기에 금자탑을 세운 무용가가 되었다. 분명 다양한 장르의 무용체험이 그로 하여금 한국무용을 시도하는 원동력이자 동인이 되어있음은 뚜렷하다.
넷째, 그는 국립무용단식 한국무용극의 공연기법과 위상을 정립한 역사적 인물이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북한이 말하는 「우리식 무용」처럼 발레식 극장무용극을 대극장 무대에 걸맞은 스펙타클한 한국무용극으로 정립하여 『도미부인』 『은하수』 『그 하늘 그 북소리』 등 주옥같은 명작을 남겼다.
다섯째, 그는 그간 일본, 북미, 중남미, 호주, 유럽, 동남아 등 숱한 해외공연에 국립무용단 작품을 소개하였고, 소품작들도 안무하여 세계무대에 한국무용을 알리고 한국민속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0여편의 장편 무용극 중에서 『도미부인』은 가장 한국적이며 전통성을 갖춘 한국인의 혼이 깃든 작품으로 미국의 「LA타임즈」는 호평을 하였다.
여섯째, 수많은 3세대 중견 한국무용가를 길러낸 무용계의 큰 스승이다. 수많은 국립무용단의 중추멤버가 모두 그의 후예이자, 이 나라 무용계를 이어나갈 대들보들이다.
일곱째, 남성무용가의 터전이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한국의 남성 무용계에 활력을 살려놓고 그들의 삶터를 마련해준 장본인이다. 송범 자신도 남성으로서 1,2 세대보다 더 어려워진 오늘의 3세대의 남성무용가들이 설 땅을 마련하여 무용수와 무용가로 성장하는데 발판을 마련해주고 이끌어준 남성무용가들의 스승이다. 국수호를 비롯해 손병우, 박정목, 정용일, 김장우 등의 많은 국립무용단 출신과 조흥동, 정재만 등의 거쳐나간 중견남성무용가 등도 불모지의 남성 무용계의 대부로서 그리고 보스로서의 어려운 환경에서 출발한 남성무용가들에게 따뜻한 배려와 강한 채찍질과 더불어 후견인 역할까지 해오지 않았던들 그들이 오늘날까지 존재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여덟째, 송범의 윗세대인 무용계 1세대인 최승희, 조택원이나 같은 2세대인 임성남 등이 당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가는 새로운 시대의 춤을 왜정시대 일본유학이라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춤의 새로운 기법과 사조를 전수받아 국내에 돌아와 이를 피력하면서 성공한 무용가들이지만, 송범만은 국내파로서 스스로 척박한 문화토양 속에서 홀로 자생하면서 외래파들이 묻어 들여온 무용철학으로 한국적인 무용작품을 잉태해낸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무대를 꾸며낸 또 하나의 역사적 인물로 좌표를 설정하였다.
아홉째, 그는 대학교수직에 몸담아 후학을 양성하면서 명예롭게 정년을 맞이한 무용가로 교육무용의 역사에도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열번째, 그는 한국근대무용 이른바 ‘신무용’을 완성한 무용사적 의의를 꼽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무용, 즉 한국근대무용은 1세대인 최승희, 조택원, 한성준 등 세대들이 꽃피워낸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근대무용사에 남긴 족적과 의의를 몇 가지로 살펴보았다. 결국 무용가 송범에 대한 가장 명확한 한마디의 평가는 무용평론가 조동화가 내린 ‘송범은 좋든 싫든 한국 무용사 그 자체이다’ 라는 것이 새삼 수긍이 간다.
해방 이후 6·25를 거치면서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온 그의 독특한 무용인생 여정과 여러 사회적 지위, 또한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의 분화가 있기 훨씬 전인 1962년부터 그는 줄곧 30년간 국립극장에 봉직하면서 ‘국립 무용단은 곧 바로 송범이다’란 등식을 성립시키면서 무용가로서의 열정과 작품창작과 제작양성에 한 평생을 몸바친 국립무용단의 살아있는 화석이다. 또한 남성 무용가로서의 무용계 중심에서 버텨온 강인한 생존력과 그가 뿌린 씨앗과 후학 등이 그 모두를 지칭하고 있는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평론가 성기숙의 평론에 근거하여 송범의 안무관과 작품경향을 살펴보면, 우선 송범의 초기 안무의 배경은 독일의 마리 뷔그만류의 현대무용 기법에서 출발되었다. 그러나 그의 초기 안무에서는 현대무용적 요소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송범은 한국춤 뿐만 아니라 인도무용, 남방무용 등을 두루 섭렵하고, 일본 유학파로서 서울발레단이라는 한국 최초의 직업발레단을 창단, 창작발레의 활성화를 모색한 한동인을 경유하는 등 장르를 초월하는 전방위적 모습을 드러낸다.
1951년 전쟁 중 발표한 『참회』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신부의 고뇌를 다룬 종교적 성향을 갖는 작품이다. 고뇌하는 노년의 예술가의 상을 그린 작품으로 한국적 선의 아름다움을 중시했다.
송범의 안무경향은 1962년 국립무용단 창단과 더불어 변화하게 된다. 국립무용단과 같은 관립 무용단체가 생겨나면서 자연히 개인 위주보다는 여러 인원이 참가하는, 집체적인 성격의 주안점을 두어진 무용극의 활성화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립무용단 제1회 발표회 때의 『靈은 살아있다』는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는 등 그의 초기 무용극의 구상은 적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 후 1963년, 흑인들의 운명적 비애를 휴머니즘적 시각에서 다룬 『검은 태양』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예컨대 평론가 김상화는 중복되지 않는 기법과 구성을 높이 샀고, 그의 작품경향을 집약한 결산이라면서 특히 옥중장면에서의 남성무의 역할을 주목한 반면, 김경옥은 흑인들의 비애를 엮은 무용극을 보여주었지만, 대형의 형성 등 아직 초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그의 무용극 형식에 대한 예술적 평가에 대하여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의 안무경향은 1963년 『사바의 유혹』, 『광열의 고독』이라는 작품에서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선무(仙舞)를 원형으로 한 『사바의 유혹』은 송범이 초창기부터 시도해 온 모던계열에서 벗어나 본격 한국무용으로 전환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시기 그는 그동안 견지해 온 마리 뷔그만류 창작경향에서 차츰 한국춤으로의 회귀를 도모하는 등 새로운 안무패턴을 추구했지만, 아직 이와 관련 뚜렷한 미학적 정체성을 드러내기에는 조금은 성급한,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별의 전설』은 견우와 직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대작 무용극으로 전통을 현대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 의의가 서려 있는 작품이다. 이와 함께 그의 초기 무용극의 경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바로 『왕자호동』이다. 『왕자호동』은 내용과 규모면에서 대작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당시 무용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안무와 연출의 극치를 이루었으며, 안무에 있어 협업의 필요성과 함께 이에 대한 새로운 선례를 남겼다.
이렇듯 1980년대 이전까지 그의 안무경향은 대체로 설화와 전설, 신화 등에서 따온 소재를 바탕으로 형식적 장식미와 유미주의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1980년대 이후 송범은 전통 및 민속의 보다 원형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꾸준하게 안무하였다. 1970년대 이전까지 한국춤의 무대화에 있어 송범의 시도는 대부분 민속춤의 무대 레퍼토리화에 치중된 감이 없지 않다. 그 후 그는 본격적으로 전통의 재창조 작업을 시도하는데, 이것은 그가 내세운 소위 송범식 무용극적 스타일과 절묘하게 융합되었다. 여하튼 송범예술의 극치는 인생 후반기에 열정을 쏟아부어 창작한 무용극이라는 장르에 집약되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송범식 무용극의 대표작(『도미부인』 『은하수』 『그 하늘 그 북소리』 등) 중 가장 수작은 역시 『도미부인』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이다. 『도미부인』은 삼국시대 백제의 도미의 처설화를 바탕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안무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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