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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자 金梅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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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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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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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무용학과 및 경희대 대학원 졸업. 뉴욕대 무용교육과 박사과정 이수(1983) |
|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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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이화여대 교수(1970- 1991). 현 북경무용대학교 조선무용과 명예교수, 중국중앙민족대 창무춤 연구실 명예교수. 창무회 설립(1976-), 사)한국무용연구회 설립 및 초대 이사장(1982-1991), 무용전용소극장 창무춤터 개관(1985), 포스트극장 설립(1992-), 사)창무예술원 창무인스티튜트·「무용예술」(현 춤전문지 「몸」) 창간. 현 사)창무예술원 창무회, 포스트극장, 창무 인스티튜트 대표, 유네스코-IFPC 협력기관 한국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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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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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작
『숨』(1975) 『비단길』(1977) 『사금파리』(1981) 『사물』(1981) 『불꽃일 줄도 몰라라』(1984),『꽃신』(1985) 『춤, 그 신명』(1986) 『춤본Ⅰ』(1987) 『떠나가는 배』(1988) 『춤본Ⅱ』(1989) 『무천』(1991) 『하늘의 문-새 천년, 해를 부르는 춤』(1999) 『심청』(2001) 『얼음 강』(2002) 외 다수 |
저술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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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한국무용의 방향정립을 위한 이론적 고찰」(1973) 「한국공연예술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1981) 「궁중무용에 나타난 한국인의 미의식」(1983) 「순수무용과 궁중무용」(1987)
저서 및 번역서
「한국의 춤」 「한국무용사」 「세계무용사」(1983, 도서출판 풀빛) 「무용인류학」 |
교의식 무용인 작법(作法) 또는 서민 무용의 대표적인 탈춤이나 농악, 또 궁중무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한국 전통무용을 몸소 체득하고 과학적으로 체계화시켜 왔다. 그는 이와 함께 이를 바탕으로 민족의식이 담긴 현대 한국무용으로 발전시켜 예술의 세계에 정착시키고자 노력한다.
그의 춤 활동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한국 창작춤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 「창무회」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창무회의 춤은 1970년대 후반부터 예술적 양식성에 있어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까지 이어졌던 신무용적 표면적인 세련미를 거부하고 소박하고 거칠고 둔탁한 우리 춤의 근원성을 찾기 시작했다. 또한 창무회의 춤은 시원주의적 미학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심리적 깊이와 더불어 춤 구성상에 있어 제의적인 긴장성과 역동성을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성취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무용사적 측면에서 창무회의 발족과 한국 창작춤 운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1920년대 후반에서부터 1970년 초까지 근 50년간 지속되었다고 보여지는 이른바 신무용류의 퇴조를 갖고 오면서 창작춤은 창무회를 중심으로 1980년대와 1990년에 들어서면서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 춤의 장르로 정착되어 갔다. 춤 언어의 인식에 있어서도 가벼움만이 아닌 무거움, 수평성만이 아닌 수직성, 표면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심리적 깊이, 과거 회상적이거나 낭만적인 정서가 저항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서를 가졌던 것이고 호흡과 맞물린 응결과 풀림, 그리고 정과 동의 움직임의 원리를 가졌다.
창무회가 중심이 된 창작춤의 운동은 우리 춤을 단순히 고전무용, 혹은 민속무용쯤으로 알던 이들에게 우리의 몸 동작으로도 진지한 아이디어와 극장 예술적인 관점을 창조적인 동작으로 표현해내고 구축해 낼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더불어 대학 아카데미즘과의 연관은 현실 사회와 20세기의 우리 문명을 보다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각의 건강함을 가지게끔 했다. 그런 창무회 중심의 지성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가 이념적 혼란에 빠졌을 때 절묘하게 그 균형을 지키면서 예술 춤의 가지를 확고히 옹호하는 태도를 가졌다.
김매자의 춤은 크게 1980년대 『춤, 그 신명』, 1990년대 「춤본」 시리즈, 2000년을 앞두고 발표한 『하늘의 눈』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춤, 그 신명』은 공동체적 신명서의 집약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82년 한국무용연구회 창립을 기념하여 안무된 것이다. 이 작품은 김매자·정재만·김정녀·임학선 등 4명이 참여한 공동작품이지만, 김매자에게 더욱 무게가 실려 있다. 이것은 바로 그가 한국 창작춤 운동의 이론과 실천 그 중심에 있었다는 점에서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춤, 그 신명』은 전통 속에 내재된 마당이라는 개념에서 차용된 공동체적 신명이 주안점이 되나, 당시로서는 극히 보기 드문 장기공연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되었다.
또한 그는 『춤본Ⅰ』과 『춤본Ⅱ』를 통하여 한국춤 동작의 구조적인 모형화, 정형화 작업을 수행했다. 『춤본Ⅰ』은 『승무』의 염불, 타령, 굿거리, 연풍대의 단계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 한국 전통춤 사위에 대한 구조적 접근을 꾀함에 있어 김매자는 『승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승무』가 한국춤의 모듬이고 기본이며 하나의 승화된 작품이라고 인식한 결과에 기초한 것이다. 김매자의 「춤본」 시리즈는 한국춤 춤사위를 바탕으로 한 하나의 본(本)으로 출발하였지만, 지금은 창무회를 중심으로 한 그녀의 제자들에 의해 작품적 가치로도 통용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1999년 김매자가 8년만에 발표한 신작 『하늘의 눈』은 60여분이 소요되는 대작에 속한다. 「섬광」(閃光) - 「혼륜」(渾淪) - 「조율」(調律) 등 모두 3장으로 나누어진 이 작품에서 김매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무대에 출연, 혼신을 다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늘의 눈』은 창무회의 초창기적 춤의 어휘들은 물론 김매자가 8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탐구해 온 한국춤 움직임의 그 원형성에의 분석과 해체작업에서 도출된 상징적 언어들이 대거 동원된 작품이다.
2001년에 새로 발표된 『심청』은 ‘춤으로 듣는 소리, 소리로 보는 춤’이란 부제로 창작무용과 완창 판소리 「심청가」의 만남을 표방한 작품으로 가치를 둘 만하다. 무엇보다 단순 명료하고 간결한 구조에다 두 장르가 갖고 있는 독특한 예술성을 비교적 세련되게 조합시켰다. 이러한 시도로 관객들은 판소리의 소리에 담겨진 의미와 정서를 우리의 몸짓으로 이뤄진 창작춤을 통해서 더 깊이있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런 만남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한 예술장르인 판소리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아울러 한국춤의 새로운 창작모델을 제시함으써 세계무대에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작품으로 입지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심청』에 대해 장광열은, “이 작품은 극장예술이 필요로 하는 여러 부문이 정확한 컨셉아래 일사분란하게 조율되어 있다. 이같은 통일성은 이 작품 전체에서 보여지는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미와 한국의 전통예술 양식이 갖는 독창성과 어우러지면서 보편적인 미로 승화됐다”고 평한다. 이 작품에서 김매자는 회화적 춤을 통해 소리의 내용에 맞춰 가면서도 상징과 은유, 과감한 생략을 통한 간결한 이미지로 소리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표현한다. 이에 힘입어 2003년에도 공연되었다.
2002년에 발표한 『얼음 강』은 언 강을 건너는 행위들을 무용언어로 형상화한 것으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70분이 넘는 장편 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 지루함의 단계를 그대로 수용, 특별한 체험을 안겨주었다. 움직임이 주가 되는 일반적인 춤 공연 형태를 벗어난 일종의 이미지 댄스를 표방하였고, 제목이 주는 차가움으로 춥다는 이미지를 김매자는 50년 전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살기 위해 선택했던 피난민들의 도강(渡江), 탈북자 등 한국의 근, 현대사와 연결시키고 있다. 창작작품에서 안무가들이 극장예술로서의 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인접 분야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최근의 추세에서 이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넘쳐나지 않으면서 시종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다는 평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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