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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묵 蔡相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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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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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전북 |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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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예대(현 중앙대) 무용과 졸업, 미국 퍼시픽 웨스턴대 대학원 졸업,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사회체육학과 졸업 |
|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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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춤』 이수자, 채상묵무용연구원 원장, 현 서울예술단 무용감독 |
|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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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대한민국무용제」 장려상(1979, 『연화정』), 전주대사습 무용부문 장원(문공부장관상)(1987, 『승무』), 「개천예술제」 최우수상(1987, 무용특장부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올해의 무용가상(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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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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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작
『배신』 『모란의 정』 『열두무녀도』(1966-74) 『원효대사』(1976) 『황진이』(1981) 『살풀이춤』(1990) 『승무』(1992-) 『북소리 4』(1994) 『사풍정감』(1997) 『흥춤』(1997) 『고이접어서 나빌레라』(1998) 『님』(1999) 외 다수
안무작
『초야』(1976) 『맹안의 소녀』(1976) 『공간+나』(1981) 『머물러 있는 魂』(1983) 『한마리 鶴이 되리라』(1984) 성춘향(1984), 『얼』(1984) 『地神님 地神님』(1985) 『공수래 공수거』(1986) 『성춘향』(1986) 『님』(1987) 『비로자나佛에 관한 명상』(1987) 『바다를 내 품에』(1988) 『魂이 흔들리는 몸짓』(1989) 『마른 풀꽃의 소리』(1990) 「다녀오겠습니다」(1990, 뮤지컬) 「꼴방지전」(1991) 『魂의 울림』(1991) 「선녀는 땅위에 산다」(1992, 서울연극제) 「이진사전」(1992, 광주시립국극단) 「얼레야」(1992, 서울창무극단) 『회심곡』(1993) 「아라아라」(1993, 서울창무극단) 「성춘향」(1994, 서울예술단) 「배비장전」(1995, 광주시립국극단) 「강능 매화전」(1994, 광주시립국극단) 「황진이」(1999, 한국오페라단) 「정읍사」(2001, 정읍국악원 정기공연) 『시인의 여정』(2001) 『홍천의 얼』(2001) 『해어화(解語花)』(2002) 외 |
저술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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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이매방 승무의 북놀이 리듬 채보」(1995, 명지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
평론가 김태원에 따르면, 현 춤계에서 원로들을 제외하고 50대 이상의 남성 한국춤꾼들로서는 조흥동, 채상묵, 민준기, 국수호, 정재만, 지희영과 같은 이들이 있다. 대개 이들은 7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을 전개하게 되는데, 그들 중 비교적 일찍부터 강한 창작욕구를 드러내며 작품을 발표한 이가 채상묵이었다. 가령 우리 춤계에서는 잘 알져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73년도에 조직됐음직한 학림회(조흥동, 채상묵, 민준기, 김근희, 문일지, 김숙자 등 참여)라는 단체의 한 공연팜플렛을 보면, 이미 1976년 11월에 있었던 국립극장 소극장 공연에서 이른바 국립무용단 방식의 무용극 공연과 함께 채상묵 안무의 창작품 『맹안의 소녀』라는 작품이 오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작품은 채상묵의 첫 안무작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1976년은 이른바 오늘의 한국창작춤을 주도한 창무회가 연구·대화모임체를 결성하여 정작 그들의 첫 공연을 갖기도 ‘전’이었다.
그 이후 채상묵은 「대한민국무용제」 1, 3, 5회에 『연화의 정』(1979), 『공간+나』(1981)와 같은 작품에 와서는 여태까지의 한국 무용 방식의 춤에서 벗어나려는 다소 ‘모던한’ 의식의 싹을 보여준다. 1981년은 창무회의 공동안무작 『도르레』와 그들의 「대한민국무용제」 출품작인 『고시래』(임학선 안무)와 함께 발표된 해이기도 한데, 이 『공간+나』에서 채상묵은 춤의 구성을 2부분(1부 「멈춰버린 시간」, 2부 「흐르는 시간」)로 나눠, 넓직한 우주 속에 어릿광대가 될 수밖에 없는 나의 존재성과 그것의 희비성을 그려가고자 했다. 당시 실제의 작품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작품의 주제나 구조에 대해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그러나 우선 제명과 그의 팜플렛 노트로부터, 그리고 이어 80년대 후반의 그의 춤작업과 연관시켜 본다면 이 『공간+나』에서 - 작품이 실패했든 성공했든- 춤창작인으로서의 채상묵의 자의식(自意識)이 확립되었지 않았나 싶다.
한국창작춤이 오늘날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게 되는 1987년을 전후하여 채상묵은 『공수래 공수거』(1986), 『님』(1987), 『비로자나불에 관한 명상』(1987)과 같은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게 되는데, 여기서 채상묵은 앞서 자신의 예술관의 두 축을 형성하게 된 공간성과 나라고 하는 개인적 자의식을 작품을 통해 매우 상징적으로, 또 명쾌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우선 채상묵의 공간 혹은 공간성은 『공수래 공수거』나 『비로자나불에 관한 명상』에서 보듯이 극장이란 제한된 공간성을 뛰어넘는 거대한 우주성을 제시하되, 그러나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는 효과적인 ‘극장예술적’ 표현방법을 동원한다. 즉 그는 『공수래 공수거』의 경우 무용수들이 들고 나온 거대하고 둥근 천으로서 그것을 시적이고 환상적인 장면을 표현해냈으며, 『비로자나불에 관한 명상』에서도 회전무대와 천으로서 무한계의 공간성을 보여주려 했다. 사실 극장에서 천이니 회전무대니 하는 것들은 흔히 동원되는 소도구이자 설비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시적(詩的) 이미지를 주면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채상묵은 남성안무가로서 국수호와 함께 그런 소도구와 장치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이들이다.
채상묵의 그런 공간성에 대한 자각이 소품(小品)의 규모에서, ‘극장의’ 공간성이란 것으로 바뀌면서, 작품을 인상적으로 안무한 것은 대중가수였던 김수희의 노래를 이용, 자신의 모친의 죽음을 인상적으로 극화시킨 『님』이라는 제목의 신촌 창무춤터에서의 공연이었다.
여기서 그는 극장의 여러 출입구를 다양하게 이용하면서 ‘님’으로 대상화한 한 여인을 비닐기둥 속에 넣고 그녀를 스케치하는 이(안무자 자신), 양복을 입고 흰 국화를 든 이, 망혼가를 부르며 지나가는 이 등, 여러 형태의 자아의 분신(分身)들을 보여주면서 공간을 다채롭게 사용했다. 그 공간성을 『공수래 공수거』나 『비로자나불에 관한 명상』에서 보듯 어떤 꿈꾸는, 혹은 상징적 공간이라기보다는, 적절하게 분할되어 위치지어진 기능적 공간성에 가까웠다.
한편 채상묵의 자의식은 다른 여타의 창작춤꾼들처럼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기대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작음’을 볼 수 있는 극히 인간적인 자각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곧 『공수래 공수거』에 엿보여진 일종의 허무의식, 우리의 전통무인 『승무』를 창작춤으로 전환시킨 『비로자나불에 관한 명상』에서 보여진 어떤 세속적 번민, 그리고 『님』에서의 극히 개인적인 그리움과 집착이 그와 같은 것이라 하겠는데, 이 부분은 채상묵의 춤을 한편으로는 별반 새로움이 없을 것 같은 데에도 어떤 인간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만드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구속받지 않는 개인적 자의식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그의 춤을 새롭게 평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특히 80년대 한국창작춤은 거의 평준화되다시피 거대(巨大) 이데올로기에 심하게 감염되어 있었다. 그 이데올로기는 무속이 보여주는 ‘초월적인 의식’이거나 어떤 집단적인 ‘공동체의 정신’, 또 외세에 항거하는 사회적 ‘비판의식’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런 가운데서 감상적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감성이나 인생관을 덧칠하거나 덧입히지 않고 담담하게, 그리고 시정(詩情)을 곁들여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작은 용기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한편 그는 자신을 ‘허허롭게 꿈꾸는 자, 혹은 번민하는 자, 혹은 그리워하는 자’의 위치로 끊임없이 귀착시키면서, 우선 자신의 춤이 한국춤이기에 우리의 전통이나 정서를 이용하면서도 그것을 다소 새롭게 확대, 변형시키고, 이어 창작되어지는 작품에는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투영시켜 맹목적인 전통춤의 몰개성성(沒個性性)과는 거리를 두게끔 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채상묵은 돌연 창작작업을 접고 자신에 대한 재교육과 전통춤 익히기에 빠져들어, 이매방류의 『승무』, 『살풀이』를 제대로 출 줄 아는 몇 안되는 남성무용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김태원은 그의 춤은 체구는 작지만 일단 무대에 오르면 근엄한 기(氣)와 일종의 카리스마를 내뿜으려 춤의 국면을 극적으로 또 절도있게 전환시키는 특질을 갖고 있으며, 25년간 지속되고 있는 한국창작춤의 영역에서 그의 활동은 90년대 들어 약 10년간의 공백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춤이 개인적 자의식의 수용체가 되고 또 인간적 면모를 띠어 갈 수 있게끔 하는데 적지 않는 기여를 했다고 말한다.
한편 2002년 채상묵이 서울예술단의 무용감독을 맡은 뒤 공연된 첫 안무작 『해어화』는 신선회 감독이 오랫동안 주장하며 다져 온 「가무악」이라는 형체의 선상에 있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노래와 춤과 음악이 있는 무대라는 말로 가무악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노래와 춤과 음악이 ‘어떻게’ 있을 것인가에 대한 특별한 고민의 흔적을 이 단체는 여러 면에서 보여주었고, 이번에 참가하는 안무자의 개성이 어떻게 거기에 합류를 할 수 있을까가 궁금한 무대였기 때문이라고 평론가 김경애는 말한다.
작품 『해어화』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으로 기생을 뜻한다. 이번 작품은 기생의 삶을 빌어서 우리 전통춤을 정갈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이 가치있는 것은 그동안 보아 온 우리 전통춤의 무대화에서 진솔함에서 오는 어떤 격조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이 『해어화』는 창작무용의 동작의 분해, 해체와 재구성의 방향이 아닌 우리 전통춤을 그대로 살리는 과정을 기생의 죽음이라는 단순한 줄거리를 통해 재현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춤의 무대화 과정은 당연 우리 전통춤이 대형무대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데서 오는 부조화, 그래서 세련미를 획득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이번 서울예술단은 연출적인 효과나 무대조명 등 무대기법이 춤으로 모아져서 볼거리를 세련되게 만들어내는, 어느 면 무용계의 한 과제를 극복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전통춤의 재구성으로 우리가 어떻게 무대화해서 현대관객을 흥미로운 무대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주는 것이었다고 김경애는 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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