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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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崔想哲
출생 : 1963년 전북
학력 : 한양대 무용과 졸업, 뉴욕대 석사, 박사 학위 취득
경력 : 최상철 댄스 프로젝트 창단(1999-)
수상 : 「춤의 해」 젊은 안무가로 선정 문예진흥기금 수혜(1992, 『심심한 여자』), 한국춤평론가회 선정 「제5회 춤비평가상」상(2000, 『까망천사』)


작품활동
안무작
『나로부터의 여행』(1989) 『Fall From Paradise』(1990) 『Cloud and Rock』(1991) 『The Unanswered Question』(1992) 『심심한 여자』(1992) 「휘가로의 결혼」(1997, 오페라) 『너메다리 너메의자』(1998) 『날아라 호빵맨』(1998) 『Try to be』(1999) 『구름과 바위』(1999) 『밟아라 아리랑』(1999) 『99 심심한 여자』(1999) 『까망천사』(2000) 『빨간 말』(2001) 「한여름밤의 꿈」(2001, 연극) 『접촉』(2001) 『빨간 백조』 외
하이테크 개념으로서의 멀티미디어와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춤과의 접목은 20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특히 영상과 춤의 융합은 시각적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보편적인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춤작업에 있어 영상은 새로운 실험작업이기보다는 단순히 메시지 전달이나 춤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보조역할에 머문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멀티미디어 댄스를 표방한 최상철 댄스 프로젝트의 『까망천사』는 영상작업에 있어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론가 장광열은 평했다.
크게 4개의 장면으로 나누어진 전체 작품구성에서 눈에 띄는 작업은 결코 적지 않았다. 막이 열리면서 검은 샤막너머도 천사의 형상이 보이고, 객석을 향해 등을 보인 무용수들의 미세한 율동,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의 움직임은 속도감있는 타악기 소리와 맞물려 인상적인 도입부를 형성한다. 또 여러 개의 모니터를 조합한 대형 모니터에 별도로 촬영된 최상철의 움직임과 표정이 클로즈업된 영상이 비춰지고, 그가 실제로 무대 위에 등장해 솔로춤을 추는 시도는 단연 올리버 그림의 카메라 테크닉이 빛을 발한 장면이었다고 장광열은 말한다. 피사체의 속도감과 여러 각도에서 잡아낸 화면의 다양성은 최상철의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임동창의 타악기 군과 어우러지면서 빼어난 협력작업을 보여주었다.
또한 안무자는 토월극장의 이동무대와 오케스트라 비트를 이용해 다양한 무대 전개를 이용하려 했으나 무대 매커니즘의 지나친 반복 사용은 오히려 작품의 흐름에 빠져들어야 하는 관객들의 감상을 방해했다. 반면 1970-80년대에 행해졌던 국민체조를 희극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어린이의 얼굴 형상을 거꾸로 매달아 객석쪽을 향하게 한 피날레는 의외성을 노린 안무자의 특별한 감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최상철의 『까망천사』 작업은 멀티미디어와 춤과의 접목 작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낸 의욕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평론가 김태원은 작품 『빨간 백조』에 대해 풍자적 춤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춤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읽는 눈을 가져야 하고, 적절한 유머와 함께 여러 표현의 수단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적분석과 섬세함 또한 가져야 한다. 만일 그런 것이 따라가 주질 않을 땐, 그것은 사회문제의 일부분을 드러내놓는 거친 춤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풍자적 춤은 그 제시의 방법에 따라 섬세한 알레고리냐 거친 사회적 고발이냐-그 사이에서 진동케 된다.
『심심한 여자』,『까망천사』 등을 만들면서 우리 사회의 일탈적 측면이나 불균형적 측면을 현대무용으로 표현해온 최상철은 『빨간 백조』에서 영상과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쓰이는 문자 메시지를 동원해가며 ‘두 겹’의 알레고리를 보여주었다. 하나는 우아한 자태의 백조/뒤뚱거리는 오리의 차별화된 형태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삶에는 그 두 가지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두 가지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런 가운데 백조를 통해 읽게 되고, 꿈꾸게 되는 미의 세계는 여전히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스스로도 안무노트를 통해 창백한 백조보다는 뒤뚱거리고 불균형한 몸짓의 오리의 건강성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그러나 그 현실계와 달리 균형 잡히고 이상적인 백조의 몸짓을 통해 꿈꾸게 되는 미의 세계는 그 세계대로 상상 속에서라도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사실 아름다움은 멀리 있지만 그러나 가까이 체화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백조 속에도 있지만, 뒤뚱거리는 우리의 움직임과 알 수 없는 욕망 속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자각이 보다 경쾌히 전달되기 위해서는 오리들의 춤이 공연 속에서 더 분주히, 더 뚜렷한 개성을 갖고 과감히 전개되었어야 옳았다. 그는 백조/오리의 대립적 세계의 부각으로 직핍했어야만 했다.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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