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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 崔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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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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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부산 출생 |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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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범대학 졸업 |
|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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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무용연구소 한국춤 사사(1946), 최현무용연구소 개원(1954, 혜화동 소재), 최현무용단 창단(1976-), 국립국악원 안무담당(1978), 국립무용단 상임지도단원(1979), 서울예대 무용과 교수(1981-1985), 전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2대 회장, 전 국립무용단 단장, 서울예고 무용과장으로 정년퇴임(1991) |
|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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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원 창작활성화 기금 수혜(1991), 제4회 ‘서울시문화상’ 공연예술부문(2000), 대한민국 예술원상, 국민훈장 화관장 서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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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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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작
『사신의 독백』(1964, 임성남 안무) 『허도령』(1964, 임성남 안무) 『배신』(1965, 송범 안무) 외 다수
안무작
『태양과 문둥이』(1964) 『비상』(1974, 1976) 『군자무』(1976, 1993) 『초라니』 『헌화가』 『시집가는 날』(1980) 『대춘향전』(1980) 『북간도』(1980) 『논개』(1980) 『마의 태자』(1981) 「허생전」(1981, 뮤지컬) 『심청가』(1982) 『처용의 노래』(1982) 『안녕』(1988) 『춘향전』『꿈의 춘향』(1992) 『비상』(1993) 『허행초』(1994)『고풍』(2001) 『비파연』(2001) 『헌화가』 『허행』 외 |
무용계의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일컬어지던 최현은 자신이 창작한 춤 『비상』으로 인간문화재 이상의 예술세계를 인정받았고 한국인의 정서를 정확히 담아낸 춤사위와 언제나 냉철하고 기품있는 무용인의 자세로 문화계 인사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일찍이 김경옥은 한국무용의 계보도에서 최현을 전통무용계열로 보고 그 한성준 계열의 한영숙, 강선영과는 달리 향토출신으로 매겨 이매방(호남), 최현(영남) 등으로 묶고 1976년도 현재 각 단위무용의 권위자를 하나씩 꼽고 있는 속에 탈춤의 「문둥탈」은 단연 우리의 최현을 들고 있어 주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타가 공인하듯 최현의 대표작으로 으뜸가는 춤이라면 『비상』을 들어야 할 것이다. 『비상』의 착상은 1974년 그가 입원 후 퇴원했을 때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새’의 의지를 독무로 안무한 작품이다. 남성춤의 호방한 기개와 절묘한 기품이 그리 많지 않았던 우리 춤사의 맥으로서의 풍류, 장인 기질이 샘솟는 『비상』의 여백의 미는 드높은 창공을 나는 학(鶴)의 고고함과 자유분방함이 이 독무의 개성으로 경상도의 덧뵈기 춤을 골격으로 당기는 맛과 풀어 버리는 묘미 또한 일품이다. 기자 구희서는 「한국의 명무」에서 “최현의 『비상』은 그의 춤과 멋과 흥이 집약된 춤이다“라고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평하기도 하였다.
그는 김해랑무용연구소에 1946년에 입소하여 8년간 그의 제자로, 또한 그의 집에서 사숙하며 『승무』 『살풀이』 『태평무』 등, 전통춤을 섭렵하며 춤철학과 예술의 역할을 배웠다. 1950년대에는 10여년간 영화 「춘향전」 「시집가는 날」 등 12편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연기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영화와 춤과 미술을 오가던 그는 서울예전 무용과 교수, 서울예고 무용과 과장, 국립무용단 단장을 역임하며, 올곧고 정확한 춤의 정신을 후학들에게 전파했으며, 항상 손의 위치, 시선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분석과 통찰력으로 춤을 창작했다. 『춘향전』 『시집가는 날』 『마의 태자』 『향가』 『파연』 『군자무』 등 20여 편이 그렇게 해서 태어난 명작들이다. 86년 아시아경기 문화축전 식전행사에서 『영고』를, 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안녕』을 총괄안무한 것을 비롯해 그가 춤에 입문한지 50년이 되던 해인 1994년 12월 2-3일 국립극장에서 그는 첫 개인발표회를 가졌다.
한국신무용의 거장 조택원은 자신의 대표작 『신로심불로』를 최현에게만 전수했다. 그가 아니곤 남성미와 화려함이 넘치는 작품을 표현할만한 무용수가 없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최현의 춤작품들은 선비처럼 단아하고 공간을 과학적으로 분배하는 정확성까지 갖춘 하나의 명품으로 평가되곤 했다.
특히 그가 안무한 『허행초』는 노년의 낭만을 시적인 풍경화로 승화시킨 것으로 호평받았는데 2000년에는 그의 춤에 반한 각계의 낭만파 명사들이 「허행초 사람들」(대표 차범석)을 결성하기도 했다. 고고하고도 절제미와 풍부한 서정을 담은 최현의 춤은 허공을 향해 비상하는 남성춤의 진수라고 이상 유인화는 평한다.
최현이 지난 40여년의 긴 춤 업적이 무용분야에 끼친 영향을 김천흥은 다음과 같이 꼽았다. 첫째는 교단에서 학생지도에 전념해 무용지망생들의 기초적인 기틀을 마련케 했고, 둘째는 자신의 무용세계의 발전, 실력배양에 주력했으며, 셋째는 작품활동으로 무용극 『초라니』를 필두로 10여편의 대작 무용극이 창작되어 우리 무용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참신한 기운을 일으켜준 점을 꼽는다.
평론가 김태원에 의하면, 최현은 『비상』, 『꿈의 춘향』, 『군자무』, 『허행초』 등을 통해 우리의 전통적 소재 속에서 섬세한 여성적 미와 품격, 유유자적의 동양적 남성세계를 재현, 부각시키려 했으며, 여기서 『꿈의 춘향』, 『군자무』가 그런 여성적 세계관의 발견이라면, 『비상』, 『허행초』는 반대로 남성적 세계관의 발견이었다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한국식 신무용을 받아들여 내면에 고전주의적 품격과 엄격성을 깔았지만, 정작 춤짓은 의태적 혹은 마임적인 극적(劇的) 몸짓에 더 가깝지 않았나 하고 김태원은 말한다. 사실상 이 부분 때문에 그를 순수주의자나 형식주의자라고 평가하는-즉, 춤의 순수 기술적 장인으로 보는-견해를 김태원은 못 받아들인다고 한다.
김태원은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최현은 조택원, 송범으로 이어지는 신무용의 마지막 주춧돌로서, 섬세한 낭만적 감성과 춤의 품격으로 동양적 심미성과 세계관을 다소의 마임성과 캐릭터성이 섞인 몸짓으로 재현하려 한 무용교육가이자 안무가라 할 수 있다고 평한다. 그러한 그의 춤은 오늘날 좀 아래 세대인 조흥동, 김현자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으며, 원필녀, 정진욱, 서영님, 정혜진, 강미선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으며, 원필녀, 정진욱, 서영임, 정혜진, 감미선, 김호동 등에게도 짙게 이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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