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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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근 韓相根
출생 : 1953년 서울
학력 : 한양대 무용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졸업
경력 :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이수자, 서울시립무용단 단원 및 지도단원(1978- 2000). 춤패 아홉 창단(1984-),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회 창립멤버(1988-), 새로운 예술의 해 무용분야 예술감독(2000). 현 대전시립무용단 상임안무가, 춤패 아홉 대표
수상 : 문예진흥원 무용분야 해외공연 연수자 선정(1991, 프랑스 연수), 2000년대를 달리는 예술가 7인 선정(1992, 신동아 주최), 문화체육부 선정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1995), 21세기 선두주자 무용부문 선정(1996, 문화일보) 외


작품활동
출연작
『학살의 숲』(1982) 『청산에 살으리라』(1985) 『맹가나무 이야기』(1987) 『백결』(1988) 『불의 여행』(1990) 『2001년』(1990) 『떠도는 혼』(1991, 배정혜 안무) 『길』(1992) 『두레』(1993) 『서울까치』(1995) 외 다수
안무작
『무초Ⅰ』(1982) 『무초Ⅱ』(1983) 『투쟁』(1984) 『침묵의 바다』(1986) 『적색경보』(1987) 『도전과 극복』(1988) 『모두가』(1989) 『사랑아…』(1990) 『신기루』(1990) 『비행』(1992) 『녹두꽃이 떨어지면』(1994) 『도라지꽃 할미꽃』(1994) 『갑사로 가는 길』(2001, 2003) 숨쉬는 조각(2001) 『상실』(2001) 『한 여름밤의 꿈』(2001) 『공기의 꿈 III』(2001) 『화가의 꿈은 사라지고』(2001) 『관계』(2001) 『꽃신』(2001) 『부가부가』(2002) 『할렐루야! 할렐루야! 다시 사신 그리스도』(2002) 『온 누리에 연꽃향기를』(2002) 『미궁』(2002) 『마당을 나온 암탉』(2002) 『사람』(2002) 『외등』(2002) 『사랑한다는 것 일곱 가지 빛깔』(2002) 『혼자사랑한다는 것은』(2002) 외 다수
뮤지컬 안무작
「한 네」 「우리는 새우젖이요」 「김대건 신부」 「백범 김구」 「들풀」 별이의 이상한 모험(2003) 외
오페라 안무작
「오델로」 「헨젤과 그레텔」 「유관순」 「심청」 외 「안중근」(연극) 「수궁가」(창극)
저술활동
논문
「세종문화회관 전속단체 발전방안모색(시립무용단을 중심으로)」(1999, 중앙대 석사학위 논문)
한상근은 현대의 시대정신에 적합한 한국무용의 무대 양식을 개발하는데 주력해왔으며, 전통미와 현대적 감각의 접목을 실험하여 한국무용이 컨템포러리한 아이디어를 내포하도록 하는 작업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시립무용단의 최장기 근속 단원으로서 쌓은 무대 경험, 연극 조연출가로서의 경력, 그리고 실험정신은 그로 하여금 새천년에 한국무용의 양식화 작업에서 선두주자가 되게 하였으며, 특히 남성 무용가로서 한국무용의 퇴행적인 무대 시각을 타개하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컸다. 그리하여 안양예술고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여 탈춤과 한국무용 기본 등을 배웠다. 1972년 안양예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연극 현장에 더 이끌렸다. 해마다 열리는 행사인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탈춤을 구경하고부터는 탈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1970년대 전반기 국내에서는 탈춤 부흥 운동이 일어나서 몇몇 무용가들은 한국무용의 아이덴티티를 자각하고, 또 무용의 사회적 역할도 모색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탈춤을 익힌 바 있는 그에게 탈춤 부흥 운동은 그의 춤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73년부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인 『강령탈춤』을 김실자, 김정순 등으로부터 배워 1979년에 그 이수자가 되었다. 그의 춤이 드러내는 생동감과 힘은 그가 탈춤으로 춤의 기본기를 익히게 된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무렵에 그는 극단에 입단, 여덟 편 가량의 연극에서 조연출을 맡았다. 주로 극단 「광장」에서 연출가 이진순 아래에서 수련한 조연출 경험은 장차 그의 춤 창작품에 큰 밑거름이 된다. 당시에 대사 위주였던 연극을 벗어나 새로운 연극, 다시 말해 새로운 공연 형식이 몸짓과 함께 모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의 무대춤의 한 가지 주요 특징을 이루는 크고 작은 스케일의 연출을 지향하는 성향은 이때 형성되었음에 틀림없다.
1978년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한 이래 그는 사실상 문일지의 제자 자격으로 한국무용을 체계적으로 배웠으며, 그 동안에 『처용무』, 『춘앵전』 등의 여러가지 궁중무용과 『승무』, 『태평무』, 『살풀이』, 『진쇠무』 등의 고전 한국무용을 익혔다. 이런 경력은 그의 현대화된 무대가 한국적 미감과 기개(氣槪)를 갖추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1982년, 국내에서는 공간사랑 소극장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을 발판으로 해서 젊은 무용가들에게 발표 기회를 자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고 창작의 기법을 실험하도록 자극한 소극장 무용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한국무용아카데미와 춤패 아홉도 이 운동에 적극 합세하였다.
1983년 12월, 그는 서울시립무용단의 공연에서 자신의 첫 창작품인 『무초』를 발표하였으며, 단순한 무대 장치와 의상을 배경으로 해서 흑백의 대조적 양상이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였다. 『무초』에서 그는 무엇보다 장래성을 예고하는 개성을 과시하였으며, 또한 시대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춤에 담아냈다. 모두 네 개의 작품을 안무한 가운데 그는 기존의 고용하던 한국무용 무대에 소음과 같은 구체음악을 도입하여 한국무용의 보수적 감각에 도전하였고 움직임에서 한국무용의 기존 구성 방식을 탈피함으로써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는 성향을 뚜렷이 내비쳤다. 기존의 한국무용 언어를 사실상 해체하고 새 언어를 모색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2인무로 재각색된 『무초』에서 그는 다른 여성 무용수와 등을 맞댄 자세에서 역학적인 상호관계를 전개해나갔고, 이 관계 속에서는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이 민중들에 대한 억눌림과 그것의 풀림을 은유하는 어떤 정치성이 담겨 있다.
이후 『무초』에서의 정치성은 『적색경보(赤色警報)』에서 강화되었다. 1987년 발표된 『적색경보』는 일종의 총체예술적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적색경보』에서 어떤 위협 세력과의 긴장어린 대결 상황에서 처한 공동체의 모습은 콜라주 형식으로 처리되었다. 연막탄 가스, TV의 원폭 및 공해의 장면들, 색종이 세례, 전자음악, 목소리, 신음소리, 손뼉치기, 사물놀이 리듬 등, 그때까지 한국무용 장르가 경험하지 못했던 시청각적 이미지들을 동반하면서 『적색경보』는 낙원 상실과 지구의 황폐화를 퍽 인상깊게 주지시켰다.
『적색경보』에서 그의 활개펴는 모습과 허리 굽혀 돌기는 한국무용에 뿌리를 대고 있었으며, 이와 동시에 다소 충동적이면서 우발적인 몸짓들은 그의 춤이 한국무용에 맴돌고 있지 않음을 여실이 드러내었다. 난무하는 시·청각적 이미지들에서는 그가 무용에 무대공학(시어트리컬리티)을 충분히 개입시킬 의사를 가졌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이미지들이 난무하도록 하는 연출 메소드는 이후 10년간 그의 작품에서 주로 동기가 된다.
1992년 주옥녀, 홍경희와 함께 공동 안무한 『비행』은 내용과 형식에서 『적색경보』의 확대 재생산판(version)이었으나 『적색경보』보다 강한 입체감을 갖고 있었다. 전반부에 무대를 가로지른 거대한 철골조, 수직으로 내걸린 집진기 모양의 구조물, 그리고 결말 부분에 정면에 높이 세워진 이동 조명 운반대는 『비행』이 펼쳐지는 규모를 남김없이 대변한다. 『적색경보』와는 달리 『비행』은 실험작이 아니라 세종문화회관의 초대형 무대에서 올려졌다는 점에서 표현주의 계열의 스펙타클을 염두에 둔 그의 굳어진 방향을 천명한 작품이었다. 여기서 그가 유럽 연수에서 피나 바우쉬 계열의 탄츠테아터에 경도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1년 반 후에 그는 서울시립무용단의 안무자로서 『녹두꽃이 떨어지면』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대형 철골조 빔을 장치로 활용하면서 여타의 장치와 이미지들을 동원하고 침략과 억압으로 점철되는 현실 세계를 다수의 피억압자의 시선으로 그렸다는 점에서는 『비행』과 근친관계에 있었고, 극적 스펙타클과 춤적 특성이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졌다는 점에서 그가 탄츠테아터에 영향받았음을 재확인해주었다. 세기말에 드라마와 댄스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무대 조류는 그의 젊은 시절 연출 경력을 되살려 놓고 있다.
이 작품에서 녹두꽃은 1894년 동학혁명에서의 전봉준 의병 대장을 상징한다. 1994년 동학혁명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타이틀 롤을 맡은 『녹두꽃이 떨어지면』은 『비행』에 강화된 춤적 요소를 다양한 극성으로 처리하고 서로 대조되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또 구체적 역사를 민중의 시각에서 해석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그는 소극장 규모의 작품 『도라지꽃, 할미꽃』을 발표하였다. 일제 치하 한국 여성들이 일본의 성적 노리개감이 된 역사적 사실이 극적 스펙타클과 춤적 특성의 동등한 관계 내에서 다시 형상화된 것은 그의 역사의식이 구체적 현실에 밀착되어 갔음을 의미한다. 이즈음 서울시립무용단의 2대 단장이던 배정혜는 한상근의 작품의 내용과 형식, 양 측면에서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 표현주의적 경향의 작업들에서 움직임은 빠른 마무리가 아니라 때로 응어리를 감내해야 하는 인간들의 육화된 내면이 폭발음의 여진처럼 전달되었다. 1999년 10월 봉건적 체제 내에서의 억압적 혼인관계를 표현주의 방식으로 이미지화한 소품 『꽃신』은 그가 여전히 표현주의적 발상을 통해 한국무용의 새 양식을 개발하는데 주력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스펙타클한 이미지가 이어지는 줄거리를 펼쳐내는 집단의 반복된 움직임에서 우리는 다시 말해 극적 연출력, 진보적 현실관 그리고 한국무용의 아이덴티티가 그의 방식으로 교차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평론가 김채현은 설명한다.
2002년 공연된 『사랑한다는 것 일곱가지 빛깔』은 그의 주된 작품의 흐름이 원초적인 힘을 바탕으로 메시지가 강한 발언을 해온 터라 서정적인 이미지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은 일단 그의 작품세계에서 낯설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곱가지 ‘빛깔’이라는 고운 이미지는 사실이되 그의 과격한 퍼포먼스를 연상시키는 작품 칼라를 보여주었다. 남과 여를 주제로 한 이성간의 사랑이 현실적으로 보여지는 이 작품은 결국은 남과 여가 만나서 살아가는 인생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론가 김경애는 말한다. 덧붙여서 이 작품의 남과 여로 상징되는 사랑의 여러 가지 얼굴들을 우리의 일상, 현실의 구조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대환시켜 볼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고도 평한다.
2001년에 초연됐던 것을 2003년 재공연한 『갑사로 가는 길』은 우선 사랑이란 보편적 소재를 적지 않은 규모의 스케일로 끌고 가면서 곳곳에 극장예술로서의 춤이 갖는 특성을 다채롭게 담아냈다. 두 주인공의 성격 묘사는 감정의 변화를 담아내는 연기의 강조로, 군무진들의 춤은 상하, 좌우, 고저 등 무대 공간을 시시각각 분할시키면서, 특히 시각적인 효과를 살려내는 쪽에 중점을 두었다. 안무자는 또 의상, 무대미술, 조명, 음악 등 극장예술로서의 무용극적 요소를 살려내는 스탭들의 협업 작업을 치밀하게 조율해냈다고 평론가 장광열은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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