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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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자 洪信子
출생 : 1940년 충남 연기
학력 : 숙명여대 영문과 졸업. 도미(渡美, 1966), 콜롬비아대 무용학 석사 취득(1971), 더 유니온 인스티튜트 무용학 박사학위 취득(1982).뉴욕대 MFA 과정 이수(1972-1973)
경력 : 인도 라즈니쉬과의 만남(1976, 인도정부 장학생), 청주대 무용학과 초청교수(1980-1981), 뉴욕 웃는돌무용단 창단(1981), 존 케이지와 함께 「샌디에고 퍼시픽 링 아트 페스티벌」 참가(1987), 영구 귀국(1993 -), 사단법인 웃는돌무용단 창단(1993-), 플럭서스 그룹 서울 공연 참가(1993, 백남준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객원교수(1997 -1999), 「죽산국제예술제」 개최(1995-1998) 및 예술감독, 현 웃는돌무용단 대표
수상 : 제1회 오늘의 여인상(1982), 중앙문화대상(1990, 무용인으로는 최초), 뉴욕예술기금수혜 선정(1981-1990), 김수근 문화상(1996), 한국무용평론가협회 첫 특별상(1996), 제5회 우경문화예술상(1997), 중국 「세계 무용사」에 세계 무용사를 만든 인물로 선정(우장핑 저서)


작품활동
안무작
『제례』(1973) 『사다리』(1973) 『실내』(1973) 『세 개의 단막』(1980) 『입에서 꼬리까지』(1981) 『둘이서 하나로』(1983) 『나선형의 대각선』(1984) 『걸으며 기도하며』(1984) 『네 개의 벽』(1985) 『섬』(1986, 1999) 『사실』(1988) 『천사들』(1988) 『세라핌(Seraphim)』(1988, 2003) 『명왕성』(1992) 『붉은 하늘』(1992) 『순례』(1992) 『시간 속으로』(1999) 『Threshold』 『2001년』 『달밤에』(2002) 『거울』(2003) 『시간밖으로』 (2003) 외 다수
저술활동
저서
「사하라의 노래」(1981, 석지현 공저, 일지사) 「댄스 오브 싸일런스」(1983, 사진집) 「홍신자-라즈니쉬와의 만남」(1985) 「푸나의 추억」(1993, 정신세계사) 「자유를 위한 변명」(1993, 정신세계사) 「The Path」(1993, 뉴욕) 「입에서 꼬리까지」(1994, 열화당)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싶다」(1998, 안그라픽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2001, 명진출판사) 「나는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2003, 열림원) 외
역서
「마하무드라의 노래」(1980, 일지사)

평론가 장광열에 따르면, 홍신자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이다. 명상적·우주적이란 단어 뒤에 숨겨진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진지함, 순간적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마력은 그의 작품 속에 담고 있는 ‘인간’과 무관하지 않다.
평론가 김채현의 설명에 따르면, 홍신자가 일생을 춤에 바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1967년 뉴욕에서 본 알윈 니콜라이(Alwin Nikolais)의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서 그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정념, 욕망, 상상 그리고 철학을 온몸으로 분출시키는 것이 춤이라고 자각하고 곧장 니콜라이 무용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부터 8년 동안 그녀는 콜럼비아대학과 뉴욕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여러 무용 스튜디오에서 수련하였다. 1971년부터 1년 동안 메레디스 몽크의 특강을 수강하였으며, 1972년 일본 무용가 케이 다케이와 공동작업을 했다. 언제나 그는 이 시기를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 자신의 혹독한 계절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당시에 뉴욕의 빈민촌 스탠톤 스트리트에 거주할 수밖에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컸다.
작품 『제례』에 대한 뉴욕 평단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이 작품은 그 후 20차례 이상 공연되었다. 10년 동안 병석에 있다가 젊은 나이에 이승을 하직한 언니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근본 모티브인 『제례』는 여성과 인간을 위한 한풀이 의식의 성격을 지녔다.
같은 해 9월 『제례』와 함께 그녀는 한국에 귀국하였다.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제례』에 대해 한국의 무용평단은 매우 호의적인 반면 무용가들은 심지어 분노와 유사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 공연에는 『제례』 외에 현대음악가 백벽동이 작곡한 음악을 사용한 작품도 함께 올려졌다. 이런 찬반 양론에도 불구하고 이때부터 한국에서 그녀는 전위무용가로 통하기 시작한 동시에 한국 현대무용가의 선두 주자로 꼽히게 된다.
1975년 그녀는 뉴욕의 이사도라 던컨 댄스 트루프의 공연에서 담백하며 자연스러운 동작을 발견하고 이 트루프의 일원으로 잠시 활동하였다. 1974년 그녀는 뉴욕에서 인도의 요법가 샴(Shyam)을 만나 잠재의식의 분출을 체계적으로 경험하고 인도로 갈 결심을 하였다. 어릴 적부터 잘 웃고 우는 기질의 그녀가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감정의 거침없는 해방을 모색해 온 때문에 그녀가 인도를 동경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1976년 그녀는 인도 정부 초청으로 인도로 갔다. 인도에 3년 머물며 그녀는 라즈니쉬와 니사가다타 마하라지에게서 명상법을 수련하였으며, 인도 예술가들에게서 인도 춤과 노래를 전수받았다. 1979년 그녀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인도에서의 과도한 고행과 순례로 몸은 피폐한 반면 무아(無我)와 육신의 해탈과 같은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다.
한편, 두개골을 든 자세에서 인체의 미세한 움직임을 반복하는 『나선형의 자세』(1984)에서처럼 그녀의 작품에서는 미니멀적 움직임이 주도하는 가운데 해탈과 달관의 세계관이 뚜렷하다.
그리고 『섬』(1986)에서는 무용수들의 접촉과 분열로써 조성되는 뛰어난 조형성을 발견할 수 있다. 뉴욕 라마마 극장에서 초연되고 1989년 한국과 중국에서 재공연된 『섬』에서 10명의 무용수들은 인류문명을 반추한 끝에 현대문명을 평결(評決)하였다. 이 공연은 한국에서 그녀의 영구 귀국을 암시하였고, 중국에서는 중국 최초의 현대무용 공연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평론가 김채현은 홍신자의 작품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와 같은 내성적 통찰을 수반한다. 동양의 정적(靜寂)을 간직한 작품들은 태초의 시간대로부터 전자문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상황 속의 삶을 반성하는 실험무용으로 분류된다. 때론 그녀가 노래와 춤을 뒤섞는 작품에서는 몰입의 경지가 느껴진다고 평한다.
1990년 무렵부터 그녀는 한국에서 여러 저서를 출판하였고, 그 가운데 자서전적 체험집 「자유를 위한 변명」은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이 책에는 구도의 무용가로서 홍신자가 살아온 인생역정이 소상하게 묘사되어 있다.
1993년 여름 그녀는 한국의 오지(奧地) 경기도 죽산에 공연장을 마련해서 정착했고 `1995년부터 해마다 「죽산 인터내셔널 아트 페스티벌」을 주최하고 있다. 이 페스티벌은 전위무용을 중심으로 미국, 유럽, 일본 그리고 아시아의 무용 조류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국과 미국, 아시아, 유럽에서의 공연활동 뿐만 아니라 그녀는 하와이와 죽산에 명상센터를 두고 심신조절법에 관한 정기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2003년의 「홍신자와 친구들-세라핌, 거울, 시간밖으로」는 홍신자 춤 30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춤은 몸 하나만으로 인간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녀가 안무한 『세라핌』은 그런 드문 체험을 안겨준 작품이다. 『세라핌』에서는 좀처럼 정형화 된 춤동작을 찾기가 힘들다. 안무자에 의해 조합된 기호들은 관객들이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무대 위를 떠다닌다. 무용수들의 지체는 마치 움직이는 시 같았고 반복과 멈춤의 시어 속에는 안무자의 함축된 메시지가 간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88년 초연작인데도 낯설지 않는 것은 말하듯 쓰는 시어, 느닷없는 호기심, 잔잔한 슬픔을 머금게 하는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시킨 데 있다.
『시간밖으로』는 철학적인 색채가 다분하다. 이 작품은 1999년에 발표한 『시간 속으로』와 어떤 면에서 연계되어 있다. 『시간 속으로』가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통과의례를 다룬 작품이라면 『시간밖으로』는 죽음 후 육체와 분리된 영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녀는 늘 관객을 사색하게 하는 철학적 무용가이다. 작품은 그의 체험으로부터 배타되어 나오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창작작업과 관련 우리나라 무용가들의 노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실에서 그녀는 앞으로30년을 더 작품 활동을 할 것이란 소신을 밝히고 있다. 설익은 젊은이들의 패기 넘치는 무대가 온통 춤계를 휩쓸고 있는 이즈음, 노 안무가의 지칠 줄 모르는 예술적 행보는 철학적 깊이의 작품과 만나고자 하는 관객에게 더 없이 소중한 존재다. 안무가가 춤꾼이 아니라면 사상이 정신을 다잡고 있는 한도내에서는 얼마든지 무대는 이미지로 빛날 것이며 작품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릴 것이다. 홍신자 역시 그런 안무가 중 한 명임은 춤 30년 기념공연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났다고 장광열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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