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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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연 黃希蓮
출생 : 1955년 서울
학력 : 이화여대 무용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경력 : 리을무용단 단장(1994-1999)및 리을춤연구원 이사장, 현 선화예고무용부장
수상 : 「동아무용콩쿠르」 (1978)


작품활동
출연작
『대화』 (1984, 배정혜 안무) 『이 땅의 들꽃으로 살아』(1985, 배정혜 안무) 『신시』(1985, 배정혜 안무) 『유리도시』(1988, 배정혜 안무) 『혼에 누워 이 바다를』(1989, 배정혜 안무) 『춘앵무』(2002) 『굿거리춤』(2002) 『진주검무』(2002) 『풀잎』(2002) 『장고춤』(2002) 외 다수
안무작
『행장』(1989) 『신부』 (1994) 『행장Ⅱ』(1994) 『달의 침묵』(1996) 외 다수
황희연은 안으로 숨는 스타일이다. 외형적으로 나타내기를 싫어한다. 1994년 첫 전통춤 공연을 가지면서 그는 아예 홍보하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자신의 춤학습에 대한 진솔한 자기 점검의 기회로 삼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춤의 이수자 자격을 따기 위해, 실적 쌓기를 위해 남발되는, 우리 무용계의 전통춤 학습과 공연의 잘못된 행태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다른 모습이다.
그의 춤 24시는 리을무용단을 중심으로 풀려간다. 그의 대표로 있는 리을무용단은 무용계에서 탄탄한 기본기로 다져진 춤 잘 추는 무용수들이 모인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무용단이 창단된 지 10년이 훨씬 넘는 문예진흥원의 지원금을 단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고 「서울국제무용제」에도 참가한 적이 없다. 외부에 요란스럽게 보여지는 활동보다 내부에서의 소리없는 활동이 어느 덧 리을무용단의 관행이 되어버렸다. 배명균-배정혜 계보로 이어지는 그의 춤은 배정혜라는 걸출한 안무가에 의해 훌륭한 무용수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거쳐 이제는 제자들을 길러내는 지도자의 위치에 더 책임감을 느끼는 곳에까지 와 있다. 그 사이에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 『대화』 『신부』 『행장』 등 일련의 작업을 통해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의 경험을 다진 그는 “안무하는 것이나 춤추는 것이나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1984년 질곡과 수난의 역사를 살아온 여인상을 다룬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에서 그은 ‘한국 여인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심성의 양태와 질감을 미묘한 차이까지 놓치지 않고 춤으로 보여줌으로써 격조와 기량을 고루 갖춘 무용가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13년 후 그는 전통춤으로 다시 우리에게 빼어난 무용수로 각인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는 언제나 남모르게 천천히 모든 것을 지속해왔다. 그 때문인지 무용계에서 그는 없는 듯 하면서 있고, 있는 듯 하면 어느새 한 곳으로 숨어 버린다. 그에게는 가족들의 반대와 춤에 대한 회의 때문에 한동안 춤을 떠나 있는 고통스런 시간이 있었다. 춤이 없는 편안함에 대한 유혹도 있었지만 그는 다시 춤을 선택했다. 40대 후반을 넘어서 이제 비로소 자신의 예술세계가 어렴풋이나마 포착될지는 모른다. 무대 위에서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눈물을 뿌리는 무용가, 드러나지 않은 채 자신의 예술세계를 다져가는 혼불 같은 열정, 그것이 무용가 그의 숨은 매력이다.
2002년 공연된 「황희연의 춤」에서 하이라이트는 『굿거리춤』이었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교방굿거리춤』 보유자인 김수악과 교방굿거리춤보존회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이 춤은 추는 사람에 따라 그 춤사위가 조금씩 다르다.
보유자인 김수악이 제자들에게 전승하는 과정에서 다소 다르게 구성된 이 춤은 그러나 다른 춤사위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형태이든 김수악 류 춤의 특성들이 조금씩은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춤추는 사람들이 김수악 춤의 멋과 맛을 제대로 알고 추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춤은 작은 움직임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그 느리고 작은 움직임 속에 맺고 풀고 놓아주고 잡아당기는 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이같은 정교함은 춤사위의 순서를 외우고 많은 연습을 한다고 해서 표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이 느리고 작은 만큼 그것을 표출하기 위해 몸속의 호흡을 다스리는 것은 엄청난 소용돌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흡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줄 아는 만만치 않은 춤 기량과 그 호흡에 의해 미세한 근육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몸이 먼저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더러 김수악류의 춤을 추는 무용수들에게서 흉내내는데 급급한 춤을 자주 목격하는 것도 김수악 춤의 실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거나 설혹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출하기 위한 몸이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황희연은 『굿거리춤』에서 자연스런 호흡에 따라 작은 움직임들을 절묘하게 조합해냈다. 치마를 살짝 감아올릴 때의 순간적인 휴지, 그것은 마치 시에서 행간의 즐거움을 발견했을 때처럼 황홀한 발견이었다. 무용수로서 그녀의 춤의 경지를 느끼게 해 준 순서였다.
그러나 그녀가 해석해낸 『굿거리춤』은 경상도 지역 특유의 흐드러진 멋과 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가 경상도 태생이 아니라는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흥이 상승되려는 순간에 그는 스스로 그것을 절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자에게는 그것이 박제화 된 전통이 아닌, 새롭게 재창조하는 작업을 더 중시하는, 김수악의 춤을 무조건 흥과 멋으로만 해석하지 않으려는 한 예술가의 고집처럼 보였다.
그녀의 이번 무대는 안무가 배명균의 작품들이 배정혜-황희연으로 이어지면서 작품의 완성도에 무용수들의 예술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대로 입증해 보였다. - 장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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