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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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남 金寶男
출생 : 1911년 서울
학력 : 이왕직아악부양성소(李王職雅樂部養成所) 제3기생으로 피리 전공(1926-1931), 한성준(韓成俊)에게 민속무용 사사
경력 : 아악수(雅樂手) 임명(1931), 「정재」(呈才) 이수, 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雅樂士) 역임, 중앙교육무용협회 창립(1949), 경기여고, 중앙여고, 숙명여고, 수도여고, 서울사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 강사


작품활동
출연작
『승무』 『풍물』 『소고춤』 『검무』 『포구락(抛毬樂)』 『춘앵전』 『장생보연지무』 『무고』 외
김보남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우리 현대 인물사에서 대단한 예술적 지조와 예술적 절개를 지닌 대표적인 예술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김보남의 춤은 부드러우면서도 근간이 살아있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격조있는 춤이다. 그러면서 그의 춤은 반듯하고 바르다고 표현할 수 있다. 필요 이상으로 굽거나 휘어지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반듯하게 조화되고 있음이 그 특징이다. 춤이 그 사람의 표현이듯 그의 춤은 결코 드러내놓지 않는 예술적 당당함이 곧은 예술적 지조와 함께 어울린 내면의 몸울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춤이 가진 ‘넓은 도량의 너그러운 포용성’이라고 밝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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