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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옥 金成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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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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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서울 |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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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무용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 경력
: |
김영희무트댄스 대표(1995-) |
| 수상
: |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선정(2002, 『Dee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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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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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작
『모르는 사이에』(1995, 김영희 안무) 『아무도 Ⅱ』(1996, 김영희 안무) 『그들은 그렇게 어디로 가는가』(1997, 김영희 안무) 『아무도 Ⅲ』(1998, 김영희 안무) 『어디만치 왔니』(1988, 김영희 안무) 『몽(꿈처럼)』(1998, 김영희 안무) 『부모은중경』(2001, 김영희 안무) 외 다수
안무작
『살아 숨쉬는』(1990) 『탈(脫)』 (1997) 『내일을 향해』(1997) 『폐곡선』(1999) 『Under- ground』(1999) 『Deep』(2002) 외 |
저술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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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서울 새남굿 춤 연구-김유감을 중심으로」(1998, 석사논문) |
김선희는 안무가 이전에 뛰어난 기교를 가진 무용수로 일찍부터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창작 작품에서 보여지는 고난도의 기교 역시 그의 타고난 무용수로서의 재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1980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함으로서 국내에서 열리는 주요 콩쿠르에 거의 입상하는 화려한 기록을 가진 주인공이다. 또한 김선희는 스승인 홍정희의 중요한 창작 발레작품에 주역 무용수로 어김없이 출연해 마음껏 그의 기량을 펼쳐 보였다.
한편 발레교육 분야와 국제 교류에서도 김선희는 한국 발레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교육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국내에 소개하고 국내의 유망주들을 본 고장에서 이 시스템으로 공부할 수 있게끔 하는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러시아 발레의 중심을 이루는 바가노바 발레 학교와의 교류 채널을 확보한 그의 공로로 체계적인 바가노바 발레 메소드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발레의 영재교육에도 적지 않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선희는 또 발레를 통한 국제교류의 활성화에도 적지 않은 공적을 쌓고 있다. 자신의 제자들을 꾸준히 세계 유명 국제발레콩쿠르에 참가시키고 있고, 그 자신이 국제 유명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적극 참여해 교류 채널을 넓히고 있으며, 1997년 일본 「사이타마국제창작무용콩쿠르」, 1998년 「파리국제발레콩쿠르」의 심사위원을 역임한데 이어 2000년에는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발레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는 등, 세계 무대에 한국 발레교육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 장광열
김성옥(金成玉)
출생 : 1968년 서울
학력 : 이화여대 무용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경력 : 김영희무트댄스 대표(1995-)
수상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선정(2002, 『Deep』)
출연작
『모르는 사이에』(1995, 김영희 안무) 『아무도 Ⅱ』(1996, 김영희 안무) 『그들은 그렇게 어디로 가는가』(1997, 김영희 안무) 『아무도 Ⅲ』(1998, 김영희 안무) 『어디만치 왔니』(1988, 김영희 안무) 『몽(꿈처럼)』(1998, 김영희 안무) 『부모은중경』(2001, 김영희 안무) 외 다수
안무작
『살아 숨쉬는』(1990) 『탈(脫)』 (1997) 『내일을 향해』(1997) 『폐곡선』(1999) 『Under- ground』(1999) 『Deep』(2002) 외
논문
「서울 새남굿 춤 연구-김유감을 중심으로」(1998, 석사논문)
많은 사람들이 김영희의 특별난 춤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데 그의 제자. 후배들이 김영희 식의 춤을 출 때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토를 달곤 한다. 김영희 무트댄스의 방법론이 독창적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춤의 틀이 아무에게나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들린다.
한 예술가가 창의적 방법론을 만들어놓으면 많은 사람들, 특히 직계 후배들은 그것을 배우며 따라하게 된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무용에서는 그런 현상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그래서 바깥 사람들은 말한다. 원조의 춤은 좋은데 후배들의 춤은 그 답습에 불과하다고. 그 독특함에서 출발하면서도 자기만의 필체를 개발하는 일은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후배 개개인의 자질과 노력, 그리고, 예능 일반이 대개 그렇듯이, 어느 만큼 세월이 흘러 제 맛이 들어야 비로소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는 후배들이 하나 둘 등장하게 된다. 무트에서도 그런 존재를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김성옥이 대표적인 경우다. 춤 자체도 그럴 뿐 아니라 이따금 발표하는 자작들에서는 더욱 그런 문제의식과 기질을 읽을 수 있다.
김성옥은 말이 별로 없다. 때로는 심심할 지경으로 덤덤할 뿐이다. 이렇게 저렇게 잘 구슬려야 비로소 속내의 한 자락을 드러낼까 말까 하는 정도다. 작품도 자주 내는 편은 아니다. 앞으로 본격적인 창작가의 길을 걸을 것인지, 연기자로서 더 충실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가르치는 일에 몰두할 예정인지 물어본 일도 없지만 쉽사리 짐작되지도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유난히 강한 김영희의 기를 다소곳이 그러나 남김없이 받아들이면서, 그러면서 서서히 제 것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야무진 구석이 이 과작가(寡作家)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하며, 그의 앞날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초기 작품인 『탈(脫)』이 묵직한 주제에 비해서는 그 주제를 풀어가는 전개법이나 동작방식이 스승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면, 2년 후에 발표한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한결 자기화된 방식으로 재정립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새로 발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삶, 죽음, 존재 같은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를 다루기 좋아하는 그에게서 느끼는 조금 답답함은 자기표현을 좀더 적극적으로, 좀더 빈번히 해도 괜찮으리라는 것이다. 요즘 세상이 대기만성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몸과 마음도 자주 써야 발달한다기에. - 이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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