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성한 金成漢 |
 |
 |
|
 |
 |
|
|
| 출생
: |
1968년 |
| 학력
: |
계명대 무용과 입학(1987). 프랑스 니스 대학원 입학(1996) |
| 경력
: |
프랑스 Jean Francois Duroure 무용단원(1995-1996), 프랑스 Ariel 무용단원(1996 -1998), 프랑스 Bruno Jacquine 무용단원(1998-2001) |
| 수상
: |
「동아무용콩쿠르」 동상(1990), 「동아무용콩쿠르」 은상 (1991), 「대구무용제」 연기상(1991),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선정(2003, 『소요시간』) |
|
작품활동 |
 |
안무작
『HWAN』(1997) 『De lion, il y avait une tombe』(1997) 『A Different Corner』(2000) 『망각의 터널』(2002) 『예수 그리스도 2002』(2002), 『소요시간』(2003) 『접촉』(2003) 『Scan-The Empty』(2004) 외 |
김성한은 늘 자신감 넘쳐 있다. 언제 보아도 씩씩하고 뭘 물어보아도 대답이 분명하다. 잘 모르겠거나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모릅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한다. 장신에 거구, 그리고 변치않는 장발마저도 그의 이런 ‘확실한 자세’를 보강하고 방증하는 소도구 역할을 한다. 누군들 망설임과 우유부단이 없으랴만 그는 언제나 속으로 해결한다.
그는 원래 한국무용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변화롭고 자유로운 표현방식에 매료돼 현대무용으로 방향을 바꾼다. 여기에는 그의 취향도 취향이지만 남성무용수 기근에서 비롯된 다양한 출연경험(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에는 좀 한다 하는 남자무용수들은 여기저기 불려다니기 바빴다), 한국무용 전공생 치고는 결코 만만치않은 발레와 현대무용의 테크닉을 믿는 마음도 작용했으리라. 전공을 바꾼 뒤에는 각종 콩쿠르에서 기량을 인정받았고 여러 단체의 공연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던 그였다.
기나긴 프랑스 유학에서는 나름대로 많은 걸 배웠겠지만 아마도 그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현지 무용단에서의 무용수 생활이었을 터이다. 특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한 장-프랑솨 뒤루르(오랜 기간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였던)무용단에서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프로페셔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定義)를 새삼 일깨워주었던 모양이다. 유럽의 몇몇 극장에서 자작(自作)을 올릴 기회를 갖게 되기까지 그를 줄곧 짓누른 생각은, 아주 상식적인 것이지만, 진정한 프로페셔널에 관한 것이었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사이비, 아닌 것, 뭘 모르는 것, 체하는 것들에 대한 그의 가차없는 비판과 조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재작년에 귀국한 이후 몇 차례 공연을 하긴 했지만(최근에는 「춤작가12인전」에서 좋은 작품을 보여주었고) 아직까진 안무가로서의 자기색깔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로서는 이번 공연이 하나의 전환점이 될 듯하다. 아울러 남자 무용수는 계속 늘어나도 남성성(男性性)은 여전히 미흡하기만 한 우리 무용사회에서 그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씩씩한 태도와 분명한 대답으로 미루어. - 이종호 |
|
 |
 |
|
 |
 |
 |
 |
 |
 |
 |
 |
 |
 |
 |
목록으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