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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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金映希
학력 : 이화여대 및 동 대학원 졸업
경력 : 한국무용연구회 이사, 현대춤협회 이사. ’88서울올림픽 폐막식 공동안무 지도위원(1988), 북경 아시안게임기념 아트 페스티벌 한국 참가작품 안무 지도위원(1990), 김영희무트댄스 창단(1995-) 및 예술감독, 현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수상 : 동아일보 「일민펠로」 기금(1996). 무용평론가가 뽑은 ‘2천년대의 무용가’로 선정(1996), 「서울공연예술제」 최우수 작품 선정(2001) 제3회 PAF 공연예술상(2003, 현대미학사 주최)


작품활동
안무작
『나의 대답 Ⅰ』(1983) 『나의 대답 Ⅱ』(1986) 『하늘과 땅과 나』(1986) 『어디만치 왔니』(1988) 『모르는 사이에』(1995) 『아무도Ⅰ』(1996) 『아무도Ⅱ』(1996) 『호흡 Ⅱ』(1996) 『호흡 Ⅲ』(1996) 『여기에Ⅰ』(1997) 『그들은 그렇게 어디로 가는가』(1997) 『여기에 Ⅱ』(1998) 『몽(꿈처럼)』(1998) 『아무도 Ⅲ』(1998) 『계시록』(1999) 『아리랑』(2000) 『아베마리아』(2000) 『다시』(2001) 『부모은중경』(2001년) 『달아』(2002) 『청년시대』(2003) 『내안의 내가』(2003) 외 다수
저술활동
저서 및 역서
「신체-동양적 심신론의 시론」(1991. 역서, 창문사) 「한국무용사」(1995, 공저, 삼진각) 「호흡기본」(1997, 현대미학사) 「호흡창작기본」(1999, 현대미학사)
논문
「별신굿 춤연구」(1982, 이화여대 석사논문) 「심신에 대한 탐구와 관념의 실재를 위한 시론」(1989, 한국무용연구 7집) 「무용 창작을 위한 관념에서의 탈피」(1990, 춤이미지) 「우리춤 뿌리의 정신과 세계관의 재해석」(1992, 한국무용연구) 「해방직후 근대 한국무용사에 관한 연구(1945-1948)」(1994, 한국무용연구 12집) 「김진걸 산조에 대한 연구」(1998, 한국무용연구) 한국무속의 전승과 예술적 특성의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2002, 한국무용연구 제20집)
1980년대 한국 창작춤의 발전기에 있어 김영희의 등장은 창작춤 제2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한 신호였을뿐 아니라, 향후 창작춤의 미학적 방향설정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하나의 계기였다. 달리 말해 김영희의 등장은 창작춤 안의 한 내파로서 70년대 중반부터 모색되기 시작했던 창작춤 운동이 바로 80년대 후반 김영희의 인상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고 또한 90년대 창작춤의 미적 변화와 실험을 현상적 측면에서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김영희 이전’의 한국 창작춤은 주제나 표현에 있어서 온고이지신적인 시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파격적인 양상이 많이 드러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김영희의 춤에 이르러 앞서의 춤 스타일이나 미의식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춤추는 행위에 대한 일말의 사색이자 응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나의 대답 I·II』(1983)와 『어디만치 왔니』(1988)에서 보여준 조류의 꽁지틈과 같이 뒤로 꺾여지는 팔동작, 격렬한 뒹굴기 그리고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서 보여준 최면적이고 집단적인 내면 응시는 그녀 이전의 춤 세대가 보여주었던 다소 완만했던 낭만성에서 ‘어둡고, 심각하며, 비틀어지며 격렬한’ 경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했고 그러한 변화는 그녀를 계승하는 김삼진. 강미리 등의 춤 세대들로 하여금 비교적 전통과 창작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면서 창작 지향적인 작업 태도를 가지게 만든다. 김영희의 경우, 이전 세대와 명확한 세대를 그으려는 의지는 80년대에 안무한 『나의 대답』, 『어디만치 왔니』, 90년대의 『모르는 사이에』, 『아무도 I, II 』에서 두드러지는 데 그러한 경향은 그녀가 ‘오늘의 춤’ 예술 흐름과 시대상을 지각하고 상기한 작품 등을 통하여 자신의 예술성을 인정받으려는 의도 외에도 춤 예술가로서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춤 작업은 90년대에 들어와서도 더 완강하게 지속되거나 변주되는 방식- 『어디만치 왔니』의 변주라 할 수 있는 『모르는 사이에』(1995), 『매직 서클』 안에서의 격렬한 솔로였던 『아무도 I』(1996)이나 『여기에』(1997), 또 이 작품을 격렬한 솔로 작품으로 안무한 『아무도 II』(1996)에서 표현의 농도가 더욱 더 강해진다. 이렇듯 이전의 춤이 신무용적인 특성이 강하여 춤의 주제상 낭만적인 정서나 춤동작에 묻어나오는 서정성을 일부 인계받으면서 보다 일관성있게 표현적인 춤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김영희는 춤동작의 표현성을 강화하면서 더욱 더 자극적이거나 심각한 양상을 보이게 되었고 때론 강한 주제적 상징성이나 메시지를 표출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 점에서 김영희는 한국 창작춤을 보다 ‘표현적인 춤’으로 이끌어 가는데 결정적인 길을 마련한 셈이다.
그의 춤은 네 가지로 특징 지을 수 있다. 첫 번째, 많은 경우 강한 내면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성향은 80년대의 『어디만치 왔니』, 90년대의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아무도 I』과 『아무도 II』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호흡을 사용하여 신체를 확장하고 강한 정적(靜的)인 포즈와 팔 등의 꺾음 사위를 사용하여 표현적인 몸짓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김영희의 호흡 사용은 그녀의 연작 『호흡 I』, 『호흡 II』, 그리고 『호흡 III』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세 번째, 춤의 형식상 다양한 주제를 설정하기보다는 제한된 특유의 상징성을 띤 깊은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를 가지고 변주를 하는가 하면 애초 창작품이 가지고 있던 군집무적 강조 못지 않게 솔로가 지닌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그의 춤은 전반적으로 우리 춤전통의 속깊음과 아방가르디즘적인 충격의 정신을 융합, 대중과 타협하지 않는 독특한 춤예술의 아우라(靈氣)를 만들고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봤을 때 김영희의 춤은 강하게 ‘표현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자극적’이고 때론 ‘비의적’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내적으로는 전통과 현대를 그대로 지켜가면서 외적으로는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였고, 창작춤을 오늘날의 것으로 자리잡게 하는, 즉 과거에 자신이 안무했던 작품들과도 ‘단호한 결별’을 시도하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연의 요소를 중시, 물은 몸으로, 불은 정신 그리고 바람은 호흡으로 은유해 삶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이 세 가지 요소로 풀어낸다.
김영희의 속 깊은 의도는 단순한 전통의 재현을 거부하였기에 한국 창작춤 내부에 파열을 초래한 원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춤이 오늘의 춤이 되기를 열망하는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춤은 이제 ‘춤 예술적 현상’- 개인의 춤이 아니라- 으로 존재하는 만큼 그 위상이 커진 것이다.
2002년에 발표한 『달아』는 창작춤의 표현성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김영희가 계속 탐구하는 제의적 주체성의 재등장이며, 전작들인 『어디만치 왔니』,『여기에』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대지적 감성과 『아리랑』 등에서 일부 보여진 어떤 신비한 탐미성이 결합된 ‘거대한 춤의 태피스리 혹은 벽화 그리기’라 할 수 있다. 세 장면으로 나눠지는 달을 향한 기원, 대지로부터 생명력의 상승, 액땜막기와 같은 전형적인 우리 제의적 창작무의 구성을 가지는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그의 춤 특유의 신비한 춤의 깊이가 심미성을 동반하고 나타난 점이다. 그 ‘심미성’의 출현은 특히 흙의 질감을 가진 무대와 밀착되어 무용수들의 춤이 수평적으로 전개되고 두 번째 장면에서 두드러졌는데, 그것은 시원적(始原的)인 대지적 힘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고분의 벽화를 볼 때와 같은, 눈부신 고아함이 뒤섞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김영희 춤이 그녀 초기(1980년대 후반)에 가진 ‘대지성’과 중기(1990년대 후반)의 ‘심미적 감성’이 이중으로 결합된 춤으로 본다. 더불어 지나친 심미성의 발현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는, 매너리즘의 싹이 여기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3분화된 에피소드적 구조 전개와 한 장면을 특징짓는 춤동작들이 미흡한 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할 수 있다고 이상 평론가 김태원은 평한다.
한편 2003년에 공연된 『내안의 내가』는 자신의 의식세계 조명에 깊이를 더해왔던 『어디만치 왔니』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작품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단 미시적인 상황의 접근을 스케일 크게 출발했다는 점이 전의 작품들과 다르다. 자아는 일상적인 고통에서 표피를 벗기면 아주 다른 색채로 드러난다. 그 고통은 어떤 의미에서 환희일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이런 소자아(小自我)는 결국 인간 본연의 공통적인 것으로 옮겨가 대승적인 층을 만날 것이다. 그래서 탄생과 휴식과 죽음의 공간으로 발전한다. 이 작품은 이 지점에서 표현이 약했다. 그래서 작품은 소자아의 고통에 머물고 만다.
결국 『내안의 내가』는 죽음에 대해 내면화하는 자기안의 여행이었던 것이다. 끝없이 이 탐구는 계속될 것이고, 그녀의 작품세계는 당분간 이 해답을 듣고 그것을 표현해 무대로 끌어내 관객과 호흡을 같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론가 김경애는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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