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진걸 金振傑 |
 |
 |
|
 |
 |
|
|
| 출생
: |
1926년 |
| 경력
: |
한성대 교수 역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역임, 한국무용협회 고문 |
| 수상
: |
대한민국 문화훈장 서훈,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한국무용협회 지정 명작무 선정(『산조』)
|
|
작품활동 |
 |
출연작
『영은 살아있다』(1962) 『영지』(1963) 『심청』(1975)
안무작
『배신』(1965) 『향토의 선율』(1966) 『향연 1부』(1968) 『봉선화 1부』(1969) 『흥취 1부』(1974) 『초혼』 『산조』 『내 마음의 흐름』 외 |
김진걸은 15살부터 무용을 했다. 일본인 吉木(요시키)에게 현대무용을 배웠으며, 발레, 현대무용, 특히 독일 모던댄스, 한국무용을 뚜렷한 계통 없이 배우다가 성장하면서 한국무용을 택하게 되었다. 6·25시절, 그는 피난 열차를 조동화 선생과 함께 타게 되었는데, 그때 조동화 선생을 만나지 않았던들 무용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그동안 그가 만든 작품 가운데 대표작을 꼽으면 『산조』이다. 『산조』는 우리의 산조가락에 얹혀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춤이다. 이 산조춤은 김진걸 자신의 사유(思惟)와 희로애락을 가능한 한 모든 그의 춤사위를 동원하여 표현한 것으로, 즉흥적인 만큼 각양각색으로 추어질 수 있다. 그러하기에 동작, 음악, 시선, 수법(手法), 보법(步法), 진행방향 등에 따라 확연히 다르게 보여질 수 있다. 이렇게 산조춤은 그의 춤 철학이 담겨 있으며, 그의 마음을 드러내 놓은 고해와도 같은 춤이다.
그러나 그는 많은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다. 또, 그는 안무작업을 할 때 형태든 의상이든 하나의 키포인트만을 가지고 풀어간다.
한편, 그가 만든 「김진걸 무용연구소」의 명성도 상당했다.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 중에도 이 무용연구소 출신들이 꽤 많다. 김영희, 조흥동, 이운철, 정명숙, 김세일라, 문일지씨 등이 있다.
작은 체구의 김진걸은 드러나는 입체적 삶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춤‘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없어서는 안될 주춧돌과 같은 존재로 일평생 무용수로서 무대를 지켰으며, 또한 무용교육자로서 충실히 살아왔다. 춤 교육자와 예술가가 공존해 있는 우리 무용계의 풍토에서는 진정한 예술 교육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교육적인 정신으로 무장한 이 시대를 대표하는 교육자였다. 즉, 그는 학교 무용에서부터 춤을 시작해 다른 교육자들과는 차별되는 어떤 뿌리 깊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
 |
 |
|
 |
 |
 |
 |
 |
 |
 |
 |
 |
 |
 |
목록으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