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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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흥 金天興
출생 : 1909년 서울
학력 :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 養成所) 제2기생으로 입학(1922),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졸업(해금 전공, 양금·아쟁 겸공)(1926
경력 : 순종황제 탄신 오순(五旬) 경축공연에 무동(舞童)으로 출연(1923), 이왕직아악부 아악수보(雅樂手補)·아악수(雅樂手)·아악수장 (雅樂手長)역임(1926-1940),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1940-1942), 조선음악가협회 조선악부 회원(1943-1945), 대한국악원 이사 겸 무용부장(1945-1947),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 소장(1955-1978), 한국국악협회 이사 및 명예회장 역임(1961-1976), 서울시 문화재 위원(1961-1980), 『종묘제례악』(제1호) 중요무형문화재 지정(1968), 『처용무』(제39호) 중요무형문화재 지정(1971), 사단법인 大樂會 회장(1973-1993), 正農樂會 회장(1977-1997), 하와이대학교 음대 객원교수(한국 전통무용 강의 및 실기지도, 1995). 현 국립국악원 원로사범(1951-) 및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1978-)
수상 : 서울시 문화상(1960), 문화재보존공로상 (1968), 제2회 한국문화대상(1969), 대한민국 예술원상(1970),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1973), 한국국악대상(1983), KBS 국악대상 특별공로상(1992), 방일영국악상(1997), 금관문화훈장 (2001)


작품활동
출연작
문하생 한국무용발표회 6회(1952-1964, 무용극 『춘향전』 『콩쥐팥쥐』 『꼭두각시』 등 소품 다수. 개인무용발표회 7회(1956-1975), 『처용랑』(1959) 『흥부놀부전』 『봉산탈춤』 등 소품 다수. 궁중무용발표회 10여회 재연안무(1977-1986). 미주지역, 동남아, 유럽 등 15차례 해외공연(1962 -1991). 정악양금 발표회(1989). 「한국의 명무명인전」(2000) 외
저술활동
저서 :
「한국무용의 기본舞譜」(1969) 「正樂洋琴譜」(1982) 「正樂奚琴譜」(1988) 「심소 김천흥 舞樂 70년」(1995, 민속원) 「呈才舞圖笏記 唱歌譜」(2002)
심소(心韶) 김천흥 선생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령 무용예술인으로서 살아있는 춤의 역사로 일컬어진다. 그는 13살이 되던 1922년부터 이왕직아악부에서 기예를 익히기 시작하였고, 1923년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의 50세 생신축하공연에 참가하였다. 처음 그가 익히기 시작한 것은 해금이었고, 이후 양금 연주와 가곡을 더하였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처용무』와 『춘앵전』 등의 궁중무용을 비롯한 다양한 춤 섭렵에도 또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그는 궁중예술과 민속예술 사이의 구분을 넘어 이 두 영역 모두를 아우르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이왕직 아악부와 조선음악협회에 속해 있던 대가들과 교분을 나누며 그들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그가 보여주는 여러 재능 중의 백미는 『춘앵전』으로서 이 아름답고 느린 궁중무용은 그가 살아온 위엄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나라 궁중정재에서는 「창사」라고 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날의 행사 의의를 송축하는 춤의 내용을 설명하는 이 창사는 아직까지 정식적으로 풀이하여 정리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김천흥 선생이 2002년에 그가 자신의 무악인생 80주년을 기념하여 총 38종의 궁중무용의 창사들을 모아 한자로 전해 오던 것을 한글로 풀이하고 정간보(옛 음악 기록법)와 오선보(현대식 악보)로 정리하여 「정재무도홀기 창사보」로 편찬하였다. 그는 이 방대한 작업의 「정재무도홀기 창사보」의 발간으로 궁중 정재의 전승과 학문적 발전을 위해 또 한번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한편, 그동안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미국 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리고 보급하는데 기여해 온 하와이주립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는 김천흥 선생이 80년간의 예술활동을 통해 소장하고 있던 방대한 양의 책, 영상, 논문, 음악자료 등에 관심을 가지고 독자적인 지원으로 총 2000여종의 자료를 입수하여 한국학연구소 내에 김천흥 컬렉션을 꾸미게 되었다. 이는 그가 하와이대학 객원교수로 초빙되었을 때 강의와 공연활동을 통해 우리의 전통예술을 미국 내에 보급하고 알리는 데 힘써 온 공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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