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06 |
[원로회고(元老回顧)] 피난지에서 국립국악원 간판올려 - 김천흥의 춤 인생(17) |
문일지 정리著 |
| 1991-07 |
[원로회고(元老回顧)] 6,25 동란중의 춤 강습 그 언저리 - 김천흥의 춤 인생(18) |
문일지 정리著 |
1991-08 |
[원로회고(元老回顧)] 국립국악원의 출범과 체전 전후 - 김천흥의 춤 인생(19) |
문일지 정리著 |
| 1991-09 |
[원로회고(元老回顧)] 국악양성소 설치와 춤 강습 - 김천흥의 춤 인생(20) |
문일지 정리著 |
1991-10 |
[원로회고(元老回顧)] 무용연구소 개설과 첫 발표회 - 김천흥의 춤 인생(21) |
문일지 정리著 |
| 1991-11 |
[원로회고(元老回顧)] 피난생활 후유증속에 대학 - 김천흥의 춤 인생(22) |
문일지 정리著 |
1991-12 |
[원로회고(元老回顧)] 50년대말의 '무용인협회' 결성 주변 - 김천흥의 춤 인생(23) |
문일지 정리著 |
| 1992-01 |
[원로회고(元老回顧)] 대학의 국악과 설치와 '한국가면극연구회'발족 - 김천흥의 춤 인생(24) |
문일지 정리著 |
1992-02 |
[원로회고(元老回顧)] <대한민속예술원> 발족 - 김천흥의 춤 인생(25) |
문일지 정리著 |
| 1992-03 |
[원로회고(元老回顧)] 어려웠던 시절 첫 수상(서울시문화상)에 감격 - 김천흥의 춤 인생(26) |
문일지 정리著 |
1992-04 |
[원로회고(元老回顧)] 60년대 초 첫 미국행에 흥분하다 - 김천흥의 춤 인생(27) |
문일지 정리著 |
| 1992-05 |
[원로회고(元老回顧)] 하와이 공연이 생각나는 이야기들 - 김천흥의 춤 인생(28) |
문일지 정리著 |
1992-06 |
[원로회고(元老回顧)] 삼천리가무단'의 미국 공연 - 김천흥의 춤 인생(29) |
문일지 정리著 |
| 1992-07 |
[원로회고(元老回顧)] 미국신문 공연평에 흥분했다 - 김천흥의 춤 인생(30) |
문일지 정리著 |
1992-08 |
[원로회고(元老回顧)] 꼭두극 재현에 긍지느껴 - 김천흥의 춤 인생(31) |
문일지 정리著 |
| 1992-09 |
[원로회고(元老回顧)] 자유중국에서의 첫 공연 - 김천흥의 춤 인생(32) |
문일지 정리著 |
1992-10 |
[원로회고(元老回顧)] 인간문화재로 지정될 때의 감격 - 김천흥의 춤 인생(33) |
문일지 정리著 |
| 1992-12 |
[원로회고(元老回顧)] 유럽공연과 대악회 창립 - 김천흥의 춤인생(34) |
문일지 정리譯 |
1993-01 |
[원로회고(元老回顧)] 문화사절로 여러나라를 다녀 - 김천흥의 춤인생 35 |
문일지 정리譯 |
| 1993-02 |
[원로회고(元老回顧)] 정농악회' 발족과 그후의 시련 - 김천흥의 춤인생(완) |
문일지 정리譯 |